[미술&소통]매일 보던 물건이 문득 낯설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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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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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씨 ‘셋을 위한 목소리’ 전

양혜규 씨의 설치작품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셋을 위한 그림자 없는 목소리’. 사진 제공 아트선재센터
양혜규 씨의 설치작품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셋을 위한 그림자 없는 목소리’. 사진 제공 아트선재센터
분명 흔히 보는 물건이다. 선풍기 거울 블라인드 램프 등. 한데 그들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낯선 얼굴의 추상적 언어가 만들어지고 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감각은 영토를 넓혀간다.

10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설치미술가 양혜규 씨(39)의 ‘셋을 위한 목소리’전은 주로 해외에서 활동해온 이 작가의 예술세계 전모를 되짚어보는 자리다. 자아와 타자,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에 주목해온 양 씨는 우리네 삶 속에 존재와 비존재, 안과 밖, 빛과 그림자 등 이원적 요소가 공존함을 일깨워준다. 전시 제목의 ‘셋’은 일종의 공동체를 상징하는 것. 관객은 전시장의 골목길 같은 동선을 걸으며 열과 바람, 냄새와 음성이 공존하는 작품을 접하고 세상살이가 쉽지 않은 연약한 존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주목받은 작가는 사진 영상 조각 설치작품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역량을 드러낸다. 일상의 사물을 차용해 ‘다치기 쉬운’ 삶의 면모를 표면으로 끌어내는 작품은 난해하면서 흥미롭다. 빨래 건조대가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는 사진 ‘접힐 수 있는 것들의 체조’에선 유머가 느껴진다. 인삼과 화장용 퍼프를 주렁주렁 걸어놓고 미용과 건강에 대한 과잉 관심에 사로잡힌 서울사람들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각 ‘서울 근성’은 유쾌하다. 영상작품으로는 지구본 모형의 변신에 삶의 복잡성을 빗댄 ‘전환하는 삼인자’, 아현동 주택가의 세부 풍경을 기록한 ‘쌍과 반쪽-이름 없는 이웃들과의 사건들’이 선보였다.

3층을 다 차지한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셋을 위한 그림자 없는 목소리’는 작가의 철학과 조형성이 매끄럽게 밀착된 설치작품이다. 선풍기의 바람과 히터의 열기, 향 분사기의 냄새가 어우러진 공간을 걸어가면서 관객은 자신의 음성에 따라 조명기구가 움직이며 빛의 안무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게 된다. 자아와 타인 사이의 익명성과 친밀성을 드러낸 작업이다.

‘셋을 위한 목소리’는 전시와 더불어 프랑스 작가 겸 감독 마르그리트 뒤라스에 대한 양 씨의 오마주를 담은 모노드라마와 영화제를 아우르는 프로젝트다. 양 씨가 각색 연출한 연극 ‘죽음에 이르는 병’(9월 11, 12일 남산예술센터), 뒤라스 영화제(9월 13∼19일 씨네코드 선재)로 이어진다. 02-733-8945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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