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시종 고전 끝에 주형욱에 역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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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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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전 4강전… 10회 우승 도전

10일 서울 한국기원에서 53기 국수전 4강전을 두고 있는 이창호 9단(왼쪽)과 주형욱 5단. 주 5단이 몸을 바둑판 쪽으로 숙인 채 수읽기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사이버오로
10일 서울 한국기원에서 53기 국수전 4강전을 두고 있는 이창호 9단(왼쪽)과 주형욱 5단. 주 5단이 몸을 바둑판 쪽으로 숙인 채 수읽기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사이버오로
주형욱 5단(26)은 입이 바싹 마르는 듯하다. 수읽기에 몰두하다 자신도 모르게 바둑판 위까지 머리가 기울어진 것을 깨닫고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앉는다.

10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열린 주 5단과 이창호 9단의 국수전 4강전. 중반전 막바지에 우하귀가 승부처다. 주 5단은 귀에서 살 것인지를 놓고 수읽기와 형세판단을 반복하고 있다. 머릿속에선 아직 득실이 정리되지 않았는데 계시원은 초읽기를 득달같이 하고 있다. 신산(神算) 이 9단을 상대로 더는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중압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초반 진행은 좋았다. 좌변에서 백의 무리한 행마를 적절히 응징하며 우세를 확보했다. 대국 승패를 알아맞히는 인터넷 바둑사이트의 베팅에서도 초반 이 9단에게 거는 사람이 압도적이었지만 100수 언저리에선 주 5단에게 거는 사람이 많아지기도 했다.

중반에 좀 더 거리를 벌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약간 느슨한 행마를 하자 이 9단이 귀신같이 알아채곤 많이 쫓아왔다. 아직도 우세하지만 한 번 더 실수가 나오면 역전되기 십상이다.

주 5단은 이 대국을 무척 기다렸다. 성적을 내는 10대와 20대 초반 기사들에게 추월당해 승부사로선 이미 끝난 것 아니냐고 눈치를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국수전에서 이 9단을 넘어 결승전에 오른다면 바둑 인생이 달라질지 모른다.

우하귀에서 득실을 가리기가 여전히 어렵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그러나 이미 초읽기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주 5단은 우하귀에서 장면도 흑 1(실전 123)로 삶의 모양을 갖추기로 마음먹는다. 주 5단은 백이 이 돌을 잡으러 오길 바라고 있다. 그러면 주 5단은 흑 돌을 버리는 사석작전으로 우세를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여기서 이 9단은 흑의 빈틈을 봤다. 흑을 잡지 않고 백 2로 마늘모한 수가 흑의 의표를 찌르는 수. 주 5단의 기대와는 달리 흑이 귀에서 살고 백은 8로 우변을 차지하는 대교환이 벌어졌다. 이건 역전이다. 여기서 흑 7을 생략하면 백 ‘가’로 흑 말이 끊긴다.

흑 1이 한 박자 늦었다는 결론이었다. 귀를 그냥 버려두고 먼저 ‘나’에 젖혀 백 ○ 한 점을 잡으며 중앙을 차지했으면 우세했다는 것이 국후 검토에서 두 기사의 일치된 견해였다.

오후 5시. 부족한 실리를 쫓아가려고 우상귀 백을 노렸지만 백이 살아가자 주 5단은 돌을 던졌다. 잠시의 침묵.

이 9단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중반까진 내가 안 좋았지.”

30여 분의 복기를 마친 뒤 주 5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다시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을까.’ 후회와 함께 피로가 밀려왔다.

이 9단은 결승 5번기에 진출해 통산 10회 우승을 노리게 됐다. 나머지 4강전은 3월 3일 홍기표 4단과 안형준 2단의 대결로 열린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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