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터 미술관, 서울 알리는 건물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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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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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공모 심사위원 버그돌 교수
“역사적 가치 최대한 살리되
현재의 삶과 균형 이뤄야”

“서울이나 뉴욕 같은 빽빽한 도시에 새 건물을 짓는 일은 미술관 큐레이터의 일과 같습니다. 무엇을 포함하고 무엇을 덜어낼지 결정해야 하니까요. 과거의 가치를 100%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옛 가치만 온전히 보존하려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겠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축설계 아이디어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맡은 배리 버그돌 미국 뉴욕 현대미술박물관(MoMA) 건축부문 수석큐레이터(55·컬럼비아대 건축사학과 교수·사진)의 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옛 국군기무사령부 터의 기무사 건물에서 지난달 30일 그를 만났다. 버그돌 교수는 이날 여기서 열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미술관 건축’ 세미나에 주제발표자로 참석했다.

버그돌 교수는 5명의 최우수상 수상자를 1일 오전 발표할 것이라며 “공모 지침에 밝힌 대로 용지에 얽힌 근현대사의 기억을 살리면서 주변 지역과의 단절을 해결한 응모작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용지면적 2만7000m², 지하 1층 지상 3층 철근콘크리트 구조인 옛 기무사 건물은 1933년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의 외래진찰소로 지어졌다. 1971년부터 국군보안사령부(현 기무사) 본관으로 쓰였고 1979년 12·12 때는 신군부 세력 등장의 진원지가 됐다. 2008년 11월 기무사가 경기 과천시로 옮겨간 뒤 2009년 1월 정부가 미술관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손택균 기자
손택균 기자
이날 세미나에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용지와 건물의 역사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새 미술관이 잘 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남길 가치가 있는 부분은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가치 판단의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어요. 역사적 사연이 복잡하게 얽힌 땅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독일 베를린에는 거리 곳곳에 나치와 공산주의의 흔적이 남아 있죠. 송두리째 없애거나 그대로 놔둬야 할까요? 흑백논리를 거둔 복합적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번 공모전 심사위원은 9명. 외국인은 버그돌 교수와 마르코 포가츠니크 이탈리아 베네치아대 건축사학과 교수, 일본 건축가 가즈요 세지마 씨 등 3명이다. 버그돌 교수는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삶이 함께 숨쉬는 공간이 되도록 밸런스를 잡는 것이 내가 초청받은 이유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인 심사위원들이 이 땅의 의미를 매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건축가나 건축주 한 사람보다는 사회 전반이 다면적 논의를 통해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현재의 건축과 인간이 과거의 가치에 희생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봅니다. 서울 심장부의 숨은 아름다움이 이 미술관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려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세미나에는 응모작을 제출한 113개 팀 외에 건축과 미술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발표 내용이 해외의 우수 미술관 사례 소개에 머물렀다는 등의 비판도 나왔다. 이주연 건축전문지 ‘공간’ 주간은 “심사위원들의 개인적 관심사를 강연하는 이벤트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참석하지 않은 건축가가 꽤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병채 예공아트스페이스건축 대리는 “미술관 건립의 의미를 알리는 목적이었다면 공모를 하기 전에 이런 행사를 열었어야 했다”며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관장의 개인적 생각이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하는 것을 보니 공모지침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지켜질지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설계자는 1일 발표될 5명의 최우수상 수상자를 대상으로 한 2차 지명설계경기를 거쳐 5월 말 확정된다. 9월 말 공사를 시작해 2012년 12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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