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과 만난 노숙자패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8일 11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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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이 노숙자를 만났을 때'.

잡동사니가 가득 담긴 쇼핑 카트를 끄는가 하면 더러운 박스더미를 뚫고 '깜짝 등장'….

영국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69)가 17일 열린 밀라노 남성복 패션위크에서 패션쇼 테마를 노숙자(homeless)로 설정해 화제가 되고 있다고 영국 '더타임스'가 18일 보도했다.

패션쇼 무대는 노숙자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대형 박스를 펼친 뒤 투명 테이프로 아무렇게나 붙여 꾸몄다. 모델들의 헤어스타일도 다듬지 않아 부스스하거나 추위 때문에 얼어 회색빛으로 변한 모습으로 연출했다.

'홈리스 시크'라고 명명된 이 패션쇼를 기획한 이유에 대해 디자이너는 최근 유럽을 강타한 혹한을 염두에 둔 듯 "이렇게 추운 날씨에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 자체가 전쟁인 노숙자들을 생각한 것으로, 이들을 돕는 기구에서 일하는 남편 친구의 얘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노숙자 생활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집에 도착했는데 열쇠가 없어 들어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른 경험은 많다"며 "이런 작은 해프닝만으로도 당황스러운데 아예 집이 없다면 얼마나 황망할까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지 패션 언론은 "이번 패션쇼 시즌을 통틀어 가장 눈에 띄는 쇼 중 하나였다"고 호평하는 가운데 영국 누리꾼들은 '녹슬지 않는 창의력이 대단하다'부터 '진작 은퇴해야 했을 디자이너가 결국 쓰레기 같은 패션을 만들어냈다'는 등 엇갈리는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웨스트우드는 이번 컬렉션에서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때 환경 보호를 위해 옷을 적게 사자'는 도발적인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공사장 인부들이 입는 오렌지색 작업복과 점퍼를 바지처럼 활용해 소매 부분에 다리를 넣게 하는 스타일링 등을 선보인 것도 재활용이란 화두를 떠올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상업적인 디자이너이면서도 "옷은 되도록 적게 사고, 필요하고 좋아해서 산 옷은 닳아 헤질 때까지 입으라"고 강조하는 그의 모습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웨스트우드는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영화 '섹스앤더시티'에서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의 결혼식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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