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10]동화 ‘신체 접촉 금지법 제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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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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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송희진
일러스트 송희진
“뽀뽀라고? 이탈리안 아이스크림 이름이야?”

“새로 나온 몬스터나 게임 주인공이겠지. 맞지?”

어제 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세종이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혹시 ‘현서나 민지가 뽀뽀를 알고 있을까?’하고 물어 보았다.

“아니, 뽀뽀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입을 맞추는 거였대.”

“뭐라고, 입을 맞춰? 너 뭐 잘못 먹었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잖아.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끼리 입을 맞추냐? 전쟁에서 적군들에게 입맞춤을 해서 세균을 퍼트렸다고 하면 믿을까, 네 말을 믿을 사람이 어디에 있어?”

“그리고 입에 이렇게 마우스키퍼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입을 맞추냐고?”

세종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친구가 차례차례 쏘아대기 시작했다. 처음에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세종이도 그 부분이 제일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무리 오래전 일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마우스키퍼를 차고 있는데 입맞춤이 가능했을까?’ 하지만 방으로 돌아와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본 후에야 비로소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정말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어제 검색했던 자료를 보여줄게. 잠깐만 기다려.”

* 뽀뽀: [명사] 2015년 신체 접촉 금지법 제3조에서 금지하기 전까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유행했던 신체 접촉 행위의 하나로 상대방과 입맞춤을 하는 행동이라고 알려져 있음.

예문1: 아침 일찍 엄마가 살며시 다가와서 뽀뽀를 해 주었다.

예문2: 신랑이 신부에게 사랑의 뽀뽀를 하자 하객들이 큰 박수를 쳤다.

현서와 민지는 검색 결과를 보고서야 ‘뭐, 아주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때 바로 옆자리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호원이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사람들끼리 입을 맞추었다고? 그건 자기 몸의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살인행위잖아. 아무리 마우스키퍼가 없던 시절이었다 해도 그건 말이 안 돼. 옛날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 정도 상식은 있었을 거야. 우리가 알다시피 마우스키퍼는 옛날 마스크라는 보호장치를 계속 발전시킨 거야. 당시에도 그 정도 위생 의식은 있었던 거지. 그런데 뽀뽀라는 게 있었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세종이는 뽀뽀가 정말 있었는지, 장난기 많으신 할머니의 거짓말이었는지 계속 헷갈렸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벗어던지고 곧장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어제 얘기해 주신 뽀뽀 말이에요.”

“그래, 왜?”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그리고 어떻게 하는 거예요?”

“지금은 불가능하지. 이 마우스키퍼라는 놈이 언제나 입 주위를 꼭 막고 있으니 말이야. 옛날에는 이런 장치 없이도 하나도 위험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전염병도 많지 않았고.”

“마스크가 있었잖아요? 그건 매일 쓰고 다니는 게 아니었어요?”

“아, 마스크? 그건 감기가 들었거나 기침을 할 때만 가끔씩 쓰는 거였어. 매일 이렇게 감옥을 달고 다니는 게 아니라. 참, 뽀뽀를 어떻게 하냐고 했지?”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마우스키퍼를 벗고 탁자에 내려놓으시더니 가까이 세종이를 부르셨다. 그때 마침 똑똑하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어머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세종이한테.”

“아니야, 별일 아니야. 뽀뽀가 뭔지 궁금하다고 해서 시범을 보여 준다는 게 그만. 미안하구나.”

“세종이, 넌 얼른 네 방으로 가. 그리고 세균 샤워 3분이다. 꼭 지켜!”

“3분이나요? 너무 길고 지겨운데.”

열과 바람으로 유해 세균을 죽인다는 세균 샤워가 세종이는 질색이다. 학교에서도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체육시간이 끝나면 어김없이 샤워를 해야 하는데, 보통은 30초 정도라 참을 만하다. 그런데 3분 동안 더운 열과 바람을 받고 있으려면 30초의 6배가 아니라 60배는 더 많이 에너지가 소비되고 참을성이 필요하다. ‘엄마는 할머니 방에만 갔다 오면 3분 목욕을 시키신단 말이야’ 투덜대면서, 세종이는 샤워 스위치를 켰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3분은 금방 지나갔다. 샤워를 하는 동안 세종이의 머릿속은 온통 뽀뽀 생각뿐이었다. 정말 뽀뽀가 있었을까?

“야, 세종아 이것 좀 봐! 네가 얘기했던 뽀뽀라는 거 혹시 이게 아닐까?”

현서가 등교를 하자마자 세종이를 불렀다.

“알다시피 내가 고물수집이 취미잖아. 어제는 할머니 방을 뒤지는데, 오래된 잡지가 있더라고. 하도 책을 오랜만에 봐서 슬며시 방에 가져와서 보는데, 네가 어제얘기했던 뽀뽀라는사진이 있어. 봐, 여기.”

사진 속에 사람들은 마우스키퍼도 없이 자유롭게 일광욕을 하고 있고, 엄마가 정말 아이의 볼에 입맞춤을 하고 있고, 어른들도 환하게 웃으며 입술을 맞추고 있었다. 뚫어져라 사진을 쳐다보고 있던 세종이는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정말 뽀뽀는 있었구나’ ‘그런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내 생각에 옛날에는 세균 위험이 요즘처럼 심하지 않았던 것 같아. 우리가 배운대로 2015년 신체접촉금지법이 전 세계적으로 나올 때 대단한 세균 확산이 있었다고 했잖아. 그게 식량전쟁, 에너지전쟁, 바이오전쟁으로 나타났고.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세균 위험이 덜하지 않았을까? 이 사진을 보더라도 손을 잡고, 서로 부둥켜 안고 있는 사람들도 많잖아.”

“현서야, 나 이거 한 장 스캔해도 될까?”

“야, 안 돼. 금지된 사진이야. 복사한 기록이 남을 거고 나중에 큰 일이 생길 수 있어.”

“그럼, 하루만 빌려 줘. 우리 할머니한테 보여주고 좀 더 확인할 게 있어서 말이야.”

“안 되는데…. 그럼 다른 곳에 빌려주지 말고 내일 바로 돌려줘야 해. 알겠지?”

세종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부리나케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오냐, 오늘은 또 뭐가 궁금하냐?”

세종이는 방문을 잠그고, 슬며시 가방에서 잡지를 꺼내었다.

“혹시, 이렇게 뽀뽀를 하는 건가요?”

“어디 보자. 그래. 용케 찾았구나. 이렇게 엄마가 아기랑 뽀뽀를 하고, 아빠 엄마도 뽀뽀를 하고, 아침에 일어났다고 뽀뽀를 하고, 행복할 때마다 언제나 뽀뽀를 했지.”

“그럼, 할머니도 뽀뽀 잘해요?”

“뭐, 잘하냐고? 호호호. 할머니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잘할 수 있어. 세종이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지금은 할머니도 세종이에게 해 줄 수가 없구나. 혹시 이 할미가 세종이한테 나쁜 병균이라도 옮기면 어떡하니? 너무 안타깝구나. 대신 할미가 뽀뽀 소리를 내 줄게.”

“소리요? 뽀뽀에 소리가 있어요?”

“그럼, 볼에 대고 뽀뽀를 하면 ’쪽‘ 소리가 난단다. 입을 모으고 한 번에 소리를 내면 돼. 이렇게, 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지.”

“우와.”

잡지를 챙겨 세종이는 방으로 돌아왔다. 간단히 세균 샤워를 하고 마우스키퍼도 풀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 얼굴을 하나둘 떠올려 보았다. 아빠, 엄마, 할머니, 민지. 세종이는 입을 모으고 쪽 소리를 내 보았다. 아직 정확한 느낌을 알 수는 없지만, 몸 전체에 행복함이 번졌다.

그렇게 세종이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뽀뽀를 해 주는 동안, 방안에는 같은 박자로 마우스키퍼 충전기의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끝>

전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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