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로 져도 좋아” 펜 대신 야구방망이 쥔 문인들…와! 공 때리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1일 03시 00분


■ 문인 야구단 ‘구인회’박형준 감독 은희경 매니저박상 고운기씨 등 22명 참여“야구는 가장 문학적인 운동내년에 야구 산문집 낼 계획”

“구인회는 아시다시피 창조적인 야구단입니다…구성원들이 야구와 얽힌 개인의 체험 등 에세이를 카페에 남겨 야구와 문학이 충돌하며 창조적으로 결합된 새로운 글쓰기의 진수를 보여줍시다.”(구인회 네이버 카페, ‘신임 감독의 말’ 중에서)

1930년대 김기림 정지용 등이 참여했던 순수문학단체 ‘구인회(九人會)’가 있었다. 그런데 야구를 좋아하는 작가들이 2009년 야구단 이름을 ‘구인회(球人會)’로 개명했다. 지난해 겨울 소설가 박상 씨를 중심으로 한 문인들이 동네 놀이터에 모여 공을 주고받다가 문단 안팎의 좋은 반응을 얻어 1년여 만에 레귤러 멤버를 갖췄다. 한국문단 최초의 정식 야구단이 출범한 셈이다. 명예구단주가 소설가 박범신 씨이고 감독과 코치가 각각 박형준 여태천 시인, 매니저가 소설가 은희경 씨다. 선수는 소설가 박성원 김태용 백가흠 박상 씨, 시인 고운기 씨 등 22명. 이들은 사회인 야구단과 경기를 1, 2주에 한 차례 벌인다.

이렇다 보니 주전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면서 작가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 회원들 몰래 실내야구장에서 개별 연습을 하거나 원고마감에 지장을 받는 작가도 있다. 문인들이 야구에 이토록 애착을 갖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구인회 회원들은 “야구야말로 가장 문학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들은 문학과 야구를 결합한 새로운 글쓰기를 선보이기 위해 최근 내년에 출간할 야구 산문집 계약도 마쳤다. 구인회 회원들이 말하는 ‘문학과 야구’를 미리 들어봤다.

○ 주관적이며 정신적인 스포츠

올해 야구소설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선보인 소설가 박상 씨는 ‘야구의 주관성’을 문학과의 공통점으로 꼽았다. 구인회의 초대 단장이기도 한 그는 “축구에는 골대, 농구에는 바스켓, 배구에는 네트란 구체적 형태가 있는데 야구의 스트라이크존은 인간의 ‘주관’이 개입되는 무형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문학 역시 작가의 개성과 창조성이란 주관을 개입시킨다는 점에서 이와 같다는 것. 그는 “수비수가 있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공간을 피해 낯선 장소로 공을 날려야 아웃을 피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남다른 것을 찾아야 하는 문학적 글쓰기와 흡사하다”고 지적한다.

고도의 정신 집중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라는 점에서도 문학과 일맥상통한다. 구인회 매니저이자 대주자로 경기에 참여하기도 했던 은희경 씨는 “외면적으로 야구는 룰에 따라 세계와 대결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는 것”이라며 “내면에의 집중, 정신적인 스포츠라는 점에서 작가들이 특히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 패자의 서사도 기록되는 스포츠

문인들은 개성이 강하고 자존심이 센 예술가 집단이다. 그러므로 단체경기이면서도 선수 개개인의 개성과 독자성이 발휘되는 야구는 생래적으로 문인들과 잘 어울린다. 은 씨는 “문인들이 공동으로 호흡을 맞춘다는 게 쉽지 않은데 야구는 그게 가능하다. 작가들이 캐릭터대로 운동하는 모습이 재밌다”고 말한다.

승패와 무관한 개별 서사가 존재한다는 점도 약자의 역사를 기록하는 문학의 특성과 흡사하다. 현재 구인회의 성적은 기록하기에 무색할 정도다. 실력이 향상된 최근 성적이 ‘0-19’ ‘4-22’(7회 경기)다. 초기에는 30점이 넘는 점수 차로도 졌다. 선수들의 기록 중 가장 높은 게 평균자책점. 하지만 감독인 박형준 시인은 “팀은 그렇게 큰 점수 차로 패배해도 경기가 끝나면 다들 ‘상대팀을 견제했다’ ‘안타를 쳤다’ 등 개인 무용담을 늘어놓느라 뒤풀이가 길어진다”고 전했다. 그는 “가난한 문인들이 모여 연패를 거듭하는 ‘루저야구단’이지만 그럴 때 느끼는 애환들은 문학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끝까지 가봐야 결말을 알 수 있는 서사의 불확정성, 반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드라마적 요소 등도 문학과 흡사하다. 소설가 박성원 씨는 “패배가 확실시돼도 공격할 기회가 다시 돌아온다는 점, 시간 제약이 없다는 점 등도 글쓰기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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