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현대미술관’ 이제 세계화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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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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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소격동 기무사 터 바로 옆 국군서울지구병원의 이전이 확정됨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 사업이 제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서울관을 세계가 주목하는 미술관으로 꾸밀 계획이다. 인근의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자리로
옮기게 되는 국군서울지구병원(왼쪽)과 현재 ‘신호탄’ 전시가 열리고 있는 옛 기무사 본관 건물. 홍진환 기자
서울 종로구 소격동 기무사 터 바로 옆 국군서울지구병원의 이전이 확정됨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 사업이 제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서울관을 세계가 주목하는 미술관으로 꾸밀 계획이다. 인근의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자리로 옮기게 되는 국군서울지구병원(왼쪽)과 현재 ‘신호탄’ 전시가 열리고 있는 옛 기무사 본관 건물. 홍진환 기자
《올해 1월 서울 종로구 소격동 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짓기로 결정한 지 10개월. 그동안 별다른 진척 없이 지지부진하던 서울관 건립사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정부가 기무사 터 바로 옆 국군서울지구병원을 인근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자리로 이전하기로 함으로써 미술계의 숙원이던 터 확보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이다. 서울지구병원의 이전이 확정되자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만들겠다. 좀 더 획기적이고 놀라운 전시를 이끌어내 세계인이 찾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서울관이 어떻게 꾸며질지 미술계는 물론이고 문화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기무사 터 옆 국군서울병원도 이전 확정… 서울관 건립 새 전기

○ 서울관 건립 어떻게 진행되나

기무사 터는 1만8281m², 국군서울지구병원은 9121m²로 이 둘을 합하면 2만7402m² 규모다. 이곳의 건폐율(49%)과 용적률(101%)을 적용하면 약 3만3000m²의 연면적이 나온다. 서울 도심에서 이 정도 면적이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내세우기에 무난하다는 평가다. 2000년 건축한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갤러리는 연면적 3만4000m², 2006년 건축한 일본 도쿄의 일본국립신미술관은 4만8000m²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2년 개관을 목표로 사업비 230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현재 기본계획 용역안이 나와 있고 설계 아이디어 공모는 전용 홈페이지(idea.moca.go.kr)에서 24일 시작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심동섭 서울관건립추진단장은 “설계 아이디어 공모에 이어 내년 초 설계안을 공모해 내년 중 착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곳은 사적으로 지정된 경복궁에서 100m 이내 거리라 공사에 앞서 발굴도 해야 한다. 건물 높이도 16m를 넘을 수 없다. 발굴에 따른 유적 보존 문제가 거론될 경우 건립사업이 지연될 수도 있다.

“세계인 주목받는 곳으로”
배순훈 미술관장 밝혀
내년초 설계안 공모후 착공


○ 서울관을 세계적 미술관으로 만들려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적인 미술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미술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경기 과천시의 국립현대미술관 본관은 수장과 연구, 미술사적인 전시에 초점을, 서울의 덕수궁미술관은 근대미술 전시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서울관은 현대의 세계 미술 현장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꾸미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배 관장은 서울관의 방향을 △국제미술 교두보로서의 미술관 △뉴미디어아트로 특화된 미술관으로 정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강승완 학예연구관은 “동시대 미술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것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형식 매체 기법에 그치지 말고, 진정으로 실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신이 담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는 “컨템포러리(동시대)로 하는 것은 좋지만 뉴미디어아트로만 가는 것은 곤란하다. 그것은 여러 경향 중 하나일 뿐이다. 특정 장르를 고집하지 말고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다양하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건물의 외관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건물도 중요하지만 컬렉션이 좋아야 한다. 세계인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을 소유하고 이를 전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관장 역시 “미술관이 건물로 승부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이제는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 콘텐츠와 관련해 지속적인 논의를 해나갈 계획이다.

뉴미디어아트 특화 여부
옛 기무사 본관 보존 놓고
미술계 안팎 논란 예상


○ 옛 기무사 본관 보존 및 활용 문제

이번 건립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기무사 본관 건물의 보존 및 활용 문제. 지상 3층, 지하 1층의 옛 기무사 본관은 일제강점기 때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으로 사용했고 이후 수차례 증개축을 거쳐 1970년대 이후엔 보안사령부 기무사령부 건물로 쓰였다.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문화재청은 2008년 이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등록문화재 건물의 외관에 손을 대려면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기무사 터와 서울지구병원의 다른 건물은 철거가 가능하다.

이를 둘러싼 논란의 발단은 기무사 본관 건물 층간 높이가 낮아 현대 설치미술 작품을 전시하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데 있다. 실내가 사무실용 공간이어서 동선을 짜기 어렵고 다양한 현대미술 전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 관장 역시 미술전시 공간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보존해야 한다는 쪽도 적지 않다. 정 실장은 “기무사 본관 보존은 14년 전 이곳에 미술관을 만들자는 운동을 펼칠 때부터 미술계와 시민사회가 합의한 내용”이라며 “이런 합의가 힘이 되어 서울관 건립이 가능했기에 보존 원칙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위원인 김정동 목원대 교수는 “기무사 자리는 조선시대 종친부와 영빈관이 있었던 중요한 역사유적”이라며 “기무사 본관을 보존하면서도 활용이 가능하며 10·26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됐던 서울지구병원의 안치실까지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에서 기무사 본관의 내부 리모델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건물의 외관과 골격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 “법인화가 세계추세… 행정 자율성 확보가 열쇠”

■ 국립현대미술관 발전방안 공개토론회


빠르면 연내 법안시안 마련
재정안정-전문인력 확보 시급


24일 오후 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법인화를 위한 토론회. 많은 참석자가 미술관의 운영 개선과 법인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졸속 추진 위험을 우려했다. 민병선  기자
24일 오후 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법인화를 위한 토론회. 많은 참석자가 미술관의 운영 개선과 법인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졸속 추진 위험을 우려했다. 민병선 기자
“세계적 박물관인 영국 대영박물관도 법인화를 통해 공익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재정자립도는 높였습니다. 예산의 30∼40%까지 파생금융상품 투자나 복권사업 같은 자체 수익사업으로 충당합니다. 법인화는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최병식 경희대 미술대 교수)

“재정 자립성보다 행정 자율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특수법인으로 전환하면 국고 지원을 오히려 늘리고 전문성을 갖춘 관장과 이사진을 선임해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지금은 준비가 부족한 만큼 법인화의 적기인지 의문입니다.”(유진상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

숙원이었던 서울관의 터 확보 문제를 해결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또 다른 과제는 독립법인화다. 24일 오후 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 강당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국립현대미술관 발전방안 공개 토론회-법인화를 중심으로’가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를 위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회다.

박순태 문화부 예술정책관은 “법인화 방침을 정하고 하반기부터 전문가 간담회를 7차례 열었다”며 이르면 연내 법인화 법안 시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병식 유진상 교수의 주제 발표에 이어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에서는 법인화로 전문성을 높이고 대중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졸속으로 추진할 경우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양현미 상명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행정 인력이 순환 근무하는 형태에서 전문 인력이 운영을 주도하는 조직이 돼야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전문 공무원의 지위는 박탈하고 예산 절감을 위해 임금은 동결한다면 전문 인력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장엽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정부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도 자체 수익사업을 통한 수익은 전체 예산의 10%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정 수준의 안정적 재정지원이 있어야 독립법인의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진석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는 미술관의 경쟁력 강화가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내 민간 미술관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해외 미술관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외국 사례를 보면 수익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는 일도 종종 발생합니다. 법인화의 한국적 모델을 고민해야 합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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