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뮤지컬 ‘당신도 울고 있나요’ 1인 8역 배우 김선경

  • 입력 2009년 10월 1일 02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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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당신도 울고 있나요’의 대본을 쓰고 1인 8역의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배우 김선경 씨. 화장 안 한 민얼굴로 괜찮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괜찮아요, 자연스럽고 ‘겸손하게’ 나오도록 찍어 주세요”라며 극장 앞 공연 포스터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 이훈구 기자
뮤지컬 ‘당신도 울고 있나요’의 대본을 쓰고 1인 8역의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배우 김선경 씨. 화장 안 한 민얼굴로 괜찮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괜찮아요, 자연스럽고 ‘겸손하게’ 나오도록 찍어 주세요”라며 극장 앞 공연 포스터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 이훈구 기자
‘당신도 울고 있나요’에 출연 중인 김선경 씨(왼쪽)와 장준휘 씨. 사진 제공 쇼온
‘당신도 울고 있나요’에 출연 중인 김선경 씨(왼쪽)와 장준휘 씨. 사진 제공 쇼온
“쓰러지지 않아 더 힘든 이들 같이 울고 위로해주고 싶어요”
힘든 일 겪은 관객 불러내 발 씻어주며 힘껏 포옹
가난-유산-이혼 등 경험 “제 상처로 공연 구성했죠”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마당 3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당신도 울고 있나요’는 배우 김선경 씨가 대본을 쓰고 1인 8역 연기까지 한 작품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보내온 청취자의 사연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극화하고 각각의 에피소드에 걸맞은 노래를 한 곡씩 들려준다.

이 작품은 본공연 못지않게 뒤풀이 공연이 흥미롭다. 김 씨와 연극배우 장준휘 씨의 카멜레온 같은 연기변신이 7편의 사연을 거치면서 웃음과 눈물을 가득히 엮어낸 뒤, 김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공개방송 형식의 토크쇼가 펼쳐진다. 먼저 김 씨가 초청한 유명 연예인들이 관객과 함께 객석에서 공연을 지켜보다가 무대로 나와 공연을 본 진솔한 소감과 자신의 근황을 들려준다. 가수 이문세 신성우 씨, 배우 안석환 정경순 추상미 이석준 이다희 서지혜 씨 등이 이 자리를 거쳤다.

하이라이트는 그 다음이다. 김 씨가 관객 중에서 ‘힘겨운 일을 겪은 사람’을 불러낸다. ‘누가 개인적인 아픔을 무대 위에서 꺼내놓을까…’ 싶기도 하지만 예상 외로 매번 감동적인 이야기가 쏟아진다. 남자에게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20대 여성, 항상 단정하게 수염을 깎던 아버지가 임종 순간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었는데 깎아드리지 못한 게 후회된다는 30대 배우, 20여 년간 모시던 시부모를 떠나보낸 뒤 일주일에 한 편씩 연극을 보러 다닌다는 50대 부부….

김 씨는 어려운 이야기를 꺼낸 이들의 발을 씻어주고 힘껏 포옹하면서 주문처럼 말한다. “괜∼찮다, 괜∼찮아.” 극중 넝마주이로 단칸방에 살면서도 하나뿐인 아들에게는 아낌없이 베푸는 꼬부랑 할머니의 대사다.

“제 어머니가 제게 늘 들려주시는 말씀이기도 해요. 제가 집안형편이 참 어려웠답니다. 힘겹게 들어간 대학도 등록금이 없어 7년 동안 다니다 말다 하며 마쳤어요. 1989년 TV 드라마 ‘비극은 없다’에 처음 출연한 것도 등록금이 필요해서였어요.”

의외였다. 시원한 이목구비를 지닌 그이지만 도도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속은 피멍 투성이였다. 그가 지난해 이혼했다는 소식만 기억했던 기자는 ‘스스로의 상처를 바탕으로 공연을 구성했다’는 말에 얼핏 화려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이혼했다는 이유 하나로 사람을 마음대로 들었다 놨다 하는 세상이 견디기 힘들었다’는 그의 말이 결코 엄살이 아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딛고 연기생활 10년 동안 모은 수억 원을 사람 잘못 믿은 탓에 날리고, 4년 연하 남편과의 결혼은 유산과 이혼으로 끝나고, TV 드라마 ‘태왕사신기’ ‘크크섬의 비밀’의 출연료도 중간 과정에서 ‘배달사고’로 몽땅 잃었다.

그렇지만 세상에 비친 그의 이미지는 화장기 없는 민얼굴로 카메라 앞에 설 만큼 자신 넘치고, 하고 싶은 말 거침없이 하는 강한 여자다. 뒤풀이 공연에서 그는 “뮤지컬계에 소위 ‘센 년 3인방’이 있는데 1등이 박해미 언니, 2등이 저, 3등이 이태원 언니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저나 그 언니들 다 그렇게 세지 않아요. 얼마나 여성스럽고 연약한데요”라고 말했다.

“왜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까 하는 생각 많이 하죠. 그런데 한 선배가 그러더군요. ‘네가 쉽게 쓰러지지 않으니까 그렇지. 세상은 원래 쓰러지지 않으려는 사람을 더 기를 쓰고 쓰러뜨리려 하거든.’ 그 이야기를 듣고, 저처럼 쉽게 쓰러지지 않아서 더 힘겨운 사람들 손을 잡고 같이 울어도 주고, 위로도 해주자는 생각을 했어요.”

후배들이 ‘형’으로 부르는 그는 자신처럼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번 작품에 무료로 출연하고 있다.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장애인과 미혼모 등 소외계층을 초청해 무료공연도 펼친다. 31일까지. 02-554-3357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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