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남산예술센터 개막작 ‘오늘, 손님 오신다’

  • 입력 2009년 9월 17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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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강박-히스테리에 빠진 도시인의 얼굴들

남산예술센터의 개막작 ‘오늘, 손님 오신다’는 인터넷TV(IPTV) 시대의 연극이라 할 만하다. 3편의 단막극이 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 연극은 같은 시간에 방영되는 드라마를 인터넷으로 내려받아 편한 시간에 나눠볼 수 있는 IPTV를 연상시킨다.

무대는 셋으로 나뉜다. 무대 오른편에선 본사의 비밀평가원 방문을 앞둔 패스트푸드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미스터리 쇼퍼’(장성희 작, 구태환 연출)가 펼쳐진다. 무대 왼편에선 쓰레기분리수거장에 살며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4명의 아이와 그 엄마를 설득하러 나선 학교 교사의 실랑이를 그린 ‘가정방문’(고연옥 작 고선웅 연출)이 공연된다. 그리고 다섯 개의 파편적 이야기를 엮은 ‘얼굴들’(최치언 작 최용훈 연출)은 객석과 객석의 왼편에 위치한 이층 발코니, 무대 위 모니터를 활용해 펼친다.

세 공연이 동시에 진행되지는 않는다. 한 작품의 공연이 이뤄지는 동안 다른 작품의 배우들은 어둠 속에서 대기하다 차례가 되면 연기를 펼친다. 마치 한 드라마를 보다가 리모컨 멈춤 버튼을 누르고 다른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이 공연을 화환에 비유할 경우 ‘미스터리 쇼퍼’가 중심이 되는 붉은 장미라면 ‘가정방문’은 그에 대비되는 백합이나 국화이고, ‘얼굴들’은 안개꽃의 역할을 한다. 개별적 세 꽃다발을 하나로 묶어주는 리본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한 경고 사이렌이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펼치고 있지만 개별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미스터리 쇼퍼’에서 친절한 서비스에 집착하는 패스트푸드점 점장, 쓰레기분리수거에 집착하는 종업원, 햄버거 세트의 선물로 따라 나오는 캐릭터에 집착하는 손님…. ‘가정방문’에서 학교가 학생을 시체로 만든다고 믿는 엄마와, 아이들은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한다고 믿는 교사. 그리고 구둣발소리와 바람소리에 히스테리를 일으키거나 자기 얼굴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얼굴들’의 주인공 모두가 그렇다.

하나하나의 작품만 뜯어보면 한국 창작극의 약점으로 손꼽히는 서사구조의 취약성이 뚜렷하다. 하지만 그런 파편적이고 산만한 서사가 뒤섞여 하나의 콜라주가 되면서 정신분열적이고 편집증적으로 변해가는 한국 사회의 창백한 초상을 그려낸다. 그런 의미에서 공연 중간 중간 들리는 사이렌을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한 경고로 설정한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선다. 이 작품이 의도했건 안했건 한국사회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된 ‘손님’의 정체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일까지. 02-758-215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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