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꽃피우는 기업에 세제혜택 햇빛을”

  • 입력 2009년 9월 15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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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메세나의 현주소

《한국오페라단의 박기현 단장은 6월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공연을 앞두고 제안서 150장을 만든 뒤 후원할 기업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기업을 찾기가 어려웠다. 박 단장은 “기업들이 예산을 삭감한 탓에 결국 30% 할인한 티켓을 단체 구매해 주는 형식의 도움에 만족해야 했다”면서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 기업이 가장 먼저 줄이는 분야가 문화예술 지원”이라고 말했다. 6월 말 한국을 찾은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는 당초 세 차례 공연을 기획했지만 기업 협찬을 받는 데 실패해 2회 공연으로 줄였다. 그나마 이 같은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5월 일본 록 가수 각트의 공연은 기업이 후원을 취소하는 바람에 중단되고 말았다.》

문화예술계 불황에 돈가뭄… 기업지원 ‘하늘의 별따기’
“기부금 세액공제 등 메세나 특별법 빨리 만들어줬으면”

○ 문화예술 지원액 6년 만에 하락

한국메세나협의회에 따르면 2008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액은 1659억 원으로 2007년 1876억 원에 비해 11.5% 감소해 2002년 이후 처음 하락했다. 지원 건수도 2389건으로 전년의 2402건 대비 0.5% 줄었다.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과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원사 등 총 629곳이 조사 대상이었다.

한국메세나협의회 이충관 A&B(기업과 예술의 만남) 팀장은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이란 경기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문화예술 지원의 위축이 장기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오픈런뮤지컬컴퍼니의 고한희 기획팀장도 “투자사조차 손을 놓고 있는 분위기라서 올해 기업 지원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 지원 필요한 장르가 더 소외돼

기업들이 지원에 따른 ‘효과’를 염두에 두고 눈길이 많이 가는 공연을 지원하려 하기 때문에 지원이 필요한 장르가 오히려 소외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임도완 대표는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통계에는 자체 운영하는 공연장 등 인프라 중심의 지원이 많기 때문에 우리 같은 작은 극단은 기업 지원을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아람누리에서 9, 10월 3회에 걸쳐 펼쳐지는 국악 명인들의 무대는 최근 무산될 위기에서 간신히 회생했다. ‘비인기 장르’라는 인식 때문에 시 예산을 배정받기 어려웠던 것. 총제작비 1억4000만 원 가운데 결국 농협이 1억 원을 지원하기로 해 묵계월, 안숙선, 김영임 명창 등을 섭외할 수 있었다. 고양아람누리는 ‘답례’로 초대권 100장을 선사했다.

고양아람누리 공연기획팀 유혁준 차장은 “국악 공연은 흥행 보장이 어렵기 때문에 큰 무대를 기획하기 어렵다”면서 “농협의 지원이 없었다면 공연을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은 고양아람누리에서 기부금 영수증을 받아 이를 손금산입(기업회계에서 비용으로 처리되지 않은 돈을 세무회계에서 손해가 난 돈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처리한다. 현행 제도는 기업이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1억 원을 지출해도 기업의 매출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비용’으로 쳐주지 않는 대신 세무회계상 ‘손해가 난 돈’으로 인정해 준다. 기업으로서 혜택이 없지는 않지만 미미한 정도다. 농협 박진용 추진팀장은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되면 경기가 어렵더라도 메세나를 활성화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메세나특별법 ‘수면 위로’

이 때문에 메세나 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외국처럼 관련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2006년 관련법 효과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고 6월 국회 공청회를 거쳐 최근 일부 국회의원이 ‘메세나 활동의 지원에 관한 법률안(메세나 특별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메세나 특별법은 △문화예술 기부금에 대한 세액 공제 △문화예술 관련 비영리법인에 대한 지방세 감면 △문화예술을 활용한 기업의 교육훈련비 세액 공제 △문화접대비 손금산입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재단사업팀 박동현 과장은 “이 법이 도입되면 특히 매출이 큰 기업의 경우 현행 제도와 비교할 수 없는 큰 세액 공제 혜택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선택’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

국내 메세나 운동은 1994년 한국메세나협의회가 결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몇몇 기업인이 개별적으로 펼쳐온 지원 활동을 좀 더 체계화해 보자는 시도였다. 이후 음악 미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업의 특성에 맞춘 문화 지원이 시도되고 있다.

포스코는 1999년부터 매달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음악회를 열고 있다. 클래식부터 국악, 록, 트로트, 발라드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이 출연하는데 매번 1200석 규모의 좌석이 다 찰 정도로 반응이 좋다. 문화시설이 부족한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에는 효자아트홀과 백운아트홀을 세웠다. 포항 국제불빛축제와 광양의 난장국악축제도 지원하고 있다.

국내 메세나 운동의 ‘맏형’ 격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77년부터 명품 악기를 무상으로 빌려 주는 악기은행을 비롯해 항공권 무상 지원, 음악 장학금 지급을 통해 음악 영재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김용연 전무는 “메세나 활동은 기업 이익의 환원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며 ‘지속 가능한 경영 기반’을 다지는 일이라는 합의가 그룹 내에 있다”고 설명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Mecenat(메세나):

메세나 기업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국가경쟁력에 이바지하는 활동을 총칭하는 용어.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문화·예술인을 지원한 재상 마에케나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200파운드 티켓을 단돈 10파운드에
英 서민들 위해 ‘나눔 프로그램’ 운영

■ 외국 기업들은 어떻게

영국의 환전은행 트래블렉스는 ‘트래블렉스 10파운드 티켓 시즌’ 프로젝트로 올해 7년째 영국 국립극장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도 관객이 연극 4편을 10파운드에 볼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프로젝트는 런던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사례로 평가받아 2006년 영국 메세나협의회가 주는 ‘A&B’상을 받았다. 왕립 오페라극장인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로또기금 지원금을 재원으로 200파운드에 이르는 공연 티켓을 저소득층에게 10파운드에 제공하는 티켓 나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카르티에사가 설립한 카르티에재단은 파리에 있는 재단 건물에서 연중 내내 테마별 및 개인 전시회를 열어 창작미술 발전을 장려한다. 무대 예술 주간모임인 ‘방랑자들의 저녁파티’도 열고 있다.

일본 아사히맥주는 ‘어린이가 주인공-숲 속 음악회’를 후원한다. 어린이들이 이 회사 소유의 숲에서 나무로 타악기를 직접 만들고 전문 연주자들과 함께 악기를 연주하는 프로그램이다.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인 유니레버는 문화예술을 사내 인력개발 교육 프로그램으로 적극 활용한다. 2000년부터 실시한 캐털리스트(Catalyst) 프로그램을 위해 전담 부서를 뒀고 직원 1명에 1500파운드의 예산을 투입했다. 프로그램에서는 연극배우와 극작가를 초청해 직원들이 이들과 함께 역할 분담극을 했다. 시인과 작가를 불러 쓰기능력 향상 워크숍도 열었다. 직원들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대한 인터뷰도 영화로 만들어 상영했다. 이 결과 사내 의사소통이 개선됐고 창의력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유니레버는 캐털리스트 프로그램을 건강, 참살이까지 범위를 확장해 ‘피플 바이탤리티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세금감면-소득공제 통해 메세나 활성화

■ 선진국의 제도적 지원

미국에서 문화 지원은 개인, 재단, 기업 등 민간 부문에서 활발하게 이뤄진다. 유럽은 중앙정부나 각 지방정부가 문화 지원의 중심에 서고 기업 메세나는 보조 역할이었으나 1980년대 이후 확대되는 추세다.

미국에서 메세나 활동이 본격 시작된 것은 1967년 체스 맨해튼 은행의 회장이었던 록펠러가 ‘예술지원기업위원회(BCA)’를 만들면서부터. 2006년에는 다른 기업 메세나 협회인 ‘예술과 기업 협의회(ABC)’와 ‘문화예술인단체(AFA)’가 합병해 거대 조직을 결성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메세나 지원정책은 세금 감면 혜택이다. 민간 부문의 문화 지원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연방정부의 세금 우대조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메세나협의회(A&B)’는 344개 기업(2009년 2월 기준)이 참여하는 메세나 기구다. 영국 문화미디어체육부가 연간 600만 파운드를 지원한다. 영국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에 세제상 우대를 한다. 기업은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하고 문화예술단체는 기업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뉴 파트너십’을 장려한다.

프랑스에서는 1980년 문화 지원을 위한 기업 단체인 ‘프랑스 기업 메세나협의회(ADMICHAL)’가 발족됐다. 2003년 8월에는 의회가 ‘메세나와 재단, 협회에 관한 법’을 통과시켰다. 한국에서 추진 중인 ‘메세나 특별법’의 모델이 되는 이 법의 골자는 소득세나 법인세 부과 대상인 기업이 매출액의 1.5% 한도 내에서 공공의 이해에 부합하는 예술조직과 활동을 지원하면 이 금액의 60%까지 세액을 감면해 주는 것이다.

일본의 ‘기업메세나협의회’는 문화예술 기부를 하려는 기업과 문화예술단체를 중개한다. 1994년부터 이 기구가 심사해 인정한 기업의 기부에 대해 소득공제나 손금산입 특례조치가 적용되고 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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