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빨래가 전하는 말

  • 입력 2009년 8월 29일 02시 59분


내 이름은 빨래, 세상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나와 마주치지만 나의 존재에 대해서는 턱없이 무심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 아니면 있거나 말거나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표정입니다. 내가 사람을 위해 얼마나 헌신적이고 희생적이고 대속적인 삶을 살아가는지 그들이 안다면 내가 아파트 베란다에 널려 있거나 단독주택 마당에 널려 있거나 혹은 공장 옥상에 널려 있어도 나를 쳐다보고 항상 고마워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합니다. 진정 보아야 할 것을 못 보고 부질없는 것에 눈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빨래가 도대체 누구 때문에 탄생했는데 이리 무시하는 걸까요.

나를 만들어 내는 건 사람의 때입니다. 내 몸에 때가 타면 도리 없이 빨랫감이 되어 혹독한 세탁의 과정을 견뎌야 합니다. 옛날에는 개울가에서 방망이질을 당하기도 했으나 요즘은 대부분 세탁기에 넣어져 가혹한 돌림질을 당합니다. 사람 몸에서 나오는 때도 성분이 점점 강해져 세제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해졌습니다. 세탁이 끝나면 나는 빨랫줄이나 건조대에 널려 고독한 건조의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때 햇살과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나는 말끔하고 깨끗하게 다시 태어나는 구원의 기쁨을 만끽합니다.

나의 삶은 구원과 희생의 반복입니다. 말끔한 세탁물이 되어 사람을 대할 때 그들은 상쾌한 표정으로 나를 반깁니다. 하지만 그들의 몸에서 생겨난 때가 나를 더럽히면 그들은 나를 벗어 쓰레기처럼 패대기칩니다. 내가 사람의 때를 벗기기 위해 혹독한 소용돌이를 견디고 건조대나 빨랫줄에 널려 바람과 햇살을 견딘 이유가 무엇인지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빨래처럼 헌신적이고 희생적이고 대속적인 삶을 살아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나쁜 건 때가 아니라 때를 남의 것인 양 도외시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몸에서 때가 생기고 그것 때문에 빨랫감이 생긴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치도 무시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빨랫감처럼 무시하고 자신의 때를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파렴치한 일도 생겨납니다. 빨래는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살지만 빨래는 항상 사람을 위해 존재합니다. 사람의 때로 더럽혀지고 사람을 위해 깨끗해지고 사람을 위해 다시 더럽혀지는 되풀이에는 대가를 생각하지 않는 숭고한 사랑이 내재돼 있기 때문입니다.

빨래는 때가 있어 항상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때의 원천은 인생이고 인생은 날마다 때를 타는 과정입니다. 문제는 때가 아니라 정화하고 다시 깨끗해질 수 있는 재생력입니다. 그것을 상실하면 때가 때인지 모르고 다시 깨끗해져야 할 당위성도 망각하게 됩니다. 더러워지는 것보다 다시 깨끗해질 수 없는 마비와 마취의 심성을 사람은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을 사람에게 일깨우기 위해 빨래는 세상 도처에 널려 침묵으로 정화의 아름다움을 보여 줍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빨래가 얼마나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가.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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