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말하는 ‘시인의 적, 시의 적’

  • 입력 2009년 8월 19일 02시 55분


계간 ‘시인세계’ 가을호 특집

시인들의 창작을 방해하는 존재는 무엇일까.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는 가을호 특집에서 시인 30명이 털어놓은 ‘시인의 적, 시의 적’을 소개했다.

시인 이근배 씨는 “내 시의 적은 몹쓸 불(不)자들이다”라고 말했다. “공부가 모자라고(不學·불학), 재주가 미치지 못하고(不及·불급), 글이 되지 못하고(不文·불문), 시가 아닌 내 시가 불귀신이 되어 꿈자리에서도 나를 덮친다.”

김종해 씨는 시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과 오독(誤讀)이 시의 토양을 황폐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념과 사상으로 무리 짓거나 작당해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 있는’ 시인을 띄우는 문학 파벌과 섹트주의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천양희 씨에게는 동어(同語) 반복이 가장 큰 적이다. 그는 “동어 반복은 시에 변화도 변모도 없게 한다”고 설명했다.

산만하고 나태한 생활을 적으로 여기는 시인들도 있다. 신달자 씨는 “시에 집중하는 시간보다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은 시인에게 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장석주 씨는 “나태에 굴복할 때 시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시인들은 스스로를 적으로 꼽기도 했다. 이재무 씨는 “내가 나로부터 멀어질수록 시도 멀어져 간다. 내 시의 적은 본래 청정으로부터 멀어진 현재의 ‘나’다”라고 고백했다. 조말선 씨도 “때때로 닥친 현실적인 고난을 못 이긴 것도 나였고 내 시의 꼴이 어떤지 알면서도 그 꼴을 벗어던지지 못한 것도 나였다”고 밝혔다.

정일근 씨는 “나의 적은 시인이다. 가장 무서운 적은 ‘나를 절망시키도록 뛰어난 시를 쓰는 시인’이다”고 털어놨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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