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8월 6일 02시 57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일제강점기 만주에 독립운동 지도자 양성소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우당(友堂) 이회영(1867∼1932)과 그의 동지이자 제자였던 일농(一농) 윤복영(1895∼1956). 1910년대 초 우당이 일농에게 마음의 징표로 그려준 난초 그림 한 점이 약 90년 만에 애틋한 사연과 함께 세상에 알려졌다.》
국내 잠입때 윤씨가 숨겨줘…묵란 그린 부채로 감사 표시
가보로 보관하던 윤씨 아들 “우당기념관에 기증하겠다”
이회영은 조선시대 백사 이항복의 11대 손으로 일제에 나라를 뺏기자 1910년 그를 포함한 6형제가 전 재산을 처분한 뒤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가 1932년 순국할 때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윤복영은 이회영과 주시경의 문하생으로서 조선어학회, 기독청년회 등을 거점으로 국내 독립운동과 교육운동에 헌신했다. 상동교회가 운영한 공옥학교 교사로 일생을 보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다. 이회영은 제자 윤복영을 늘 동지로 여겼다. 1913년 이회영이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주에서 서울로 잠입했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윤복영의 거처였다.
윤 전 장관은 “우당이 방 안 병풍 뒤에서 기거했다는 얘기를 집안 어른들께 들어왔다”며 “우당이 만주로 돌아간 뒤 고마움의 표시로 묵란을 부채에 그려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회영이 만주로 돌아간 때가 1919년이어서 이때쯤 그림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두 집안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윤복영은 훗날 초대 부통령이 되는 성재 이시영(이회영의 동생) 등 이회영 일가가 광복 후 중국에서 돌아왔을 때 본인의 집을 본적으로 해서 호적을 마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회영의 증손자인 연세대 이철우 교수는 “윤형섭 선생의 가문이 우리 집안을 도와주느라 재산도 많이 축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두 집안사람들이 우연히 우당의 일대기를 다룬 강연에 동시에 참석한 것이 두 가문의 사연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당시 강연을 했던 명지대 강규형 교수가 두 가문의 얘기를 듣고 정식 만남을 주선한 것. 이에 따라 이회영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과 윤 전 장관이 서울 종로구 신교동 우당기념관에서 만나 최근 식사를 함께했다.
이렇게 교류가 시작됐고 윤 전 장관은 부챗살을 뺀 채로 액자에 넣어 보관하던 그림을 우당기념관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두 가문은 기증 날짜를 선택하다가 또 한 번 놀랐다. 윤복영과 이회영의 기일이 공교롭게도 양력 11월 17일로 같았기 때문. 윤 전 장관은 아버지 기일인 이날 그림을 돌려주기로 했다.
윤 전 장관은 “10여 년 전부터 기일 추모예배에서 아버님이 우당 일가를 도와 독립운동을 하셨던 얘기들을 손자들에게 들려주었다”며 “올해는 하루 앞당겨 추모예배를 하고 다음 날 우당 선생 추도식에 참석해 그림을 기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당기념사업회는 감사의 표시로 이날 일농과의 인연을 주제로 한 작은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