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묻혔던 설화 ‘雲林’ 오페라로 환생

입력 2009-07-24 03:00수정 2009-09-2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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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자신의 유일한 오페라 ‘운림’의 악보를 들고 있는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 씨. 홍진환 기자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 씨 30년 만에 완성
악보만 476쪽… 참사랑 다룬 2시간반짜리 대작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최영섭 씨(80)가 최근 창작 오페라 ‘운림(雲林)’을 완성했다. 250여 편의 가곡을 쓴 그가 오페라를 만든 것은 처음이다. 악보만 476쪽에 이르고, 합창단과 사물놀이패를 포함해 150여 명이 무대에 서는 2시간 반짜리 대작이다.

도 닦는 청년 운림이 용왕의 딸 용희와 만나 겪는 사랑, 이별, 재회가 기둥 줄거리.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최 씨는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 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아리랑’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별가’ 등 우리 민요를 포함시켰다. 극 중 선녀 의상은 무용가 최승희의 수제자 김백봉이 선녀 옷을 입고 찍은 사진에서 구상했으며, 무대 위 꽃 장식에는 용수철을 쓰도록 하는 등 연출방식도 대본에 기록해뒀다.

이 오페라의 시작은 6·25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0대의 젊은 작곡가였던 그는 헌책방에서 꼬질꼬질한 설화집을 손에 넣었다. 그 속에 담긴 ‘운림지’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1955년 인천여중에서 음악교사를 할 때 이 설화로 20분짜리 오페레타(소형 오페라)를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무대에 올렸다.

그가 재미있는 오페레타를 썼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서울 대구 등 전국 각지의 학교에서 대본을 요청해왔다. 공연을 해본 음악교사들이 “이걸로 제대로 된 그랜드 오페라를 써 보라”고 권유했다. 그가 “먹고사느라 미뤄뒀다가” 오페라 ‘운림’에 착수한 게 1979년이다. 그 전에 국립극단이 ‘페르귄트’(연출 이진순)를 공연할 때 음악 스태프로 참여해 연출도 세심히 눈여겨봤다.

교직생활과 작곡 일을 하면서 오페라를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시간 나면 한두 쪽씩 쓰다 보니 세월이 훌쩍 흘렀다. 2007년 9월 100쪽쯤 썼을 때 과로로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갔다. 중환자실에 누워 세상을 떠나는 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하나 곰곰 따져 보니 오페라 완성이더군요. 살아서 병원을 나간다면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30년 만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네요. 춘향이나 낙랑공주로 오페라를 쓰고 싶지만 이제 나이도 많고… 못하겠지요.”

오페라 ‘운림’은 민간 오페라단 세 곳이 내년 봄에 공동으로 무대에 올리기 위해 협의하고 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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