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발레시어터 한국인 첫 주역

  • 입력 2009년 7월 10일 02시 57분


서희 씨, 정식 단원 4년 만에 줄리엣 역 맡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개무량한 거 있죠. ‘로미오와 줄리엣’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발레리나라면 꼭 서 보고 싶은 작품이잖아요. 어제 리허설 때는 떨렸는데 오늘은 빨리 무대에 서고 싶네요. 제 자신이 어떤 모습일지 저도 기대가 되니까요.”

세계 3대 발레단의 하나인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활동 중인 서희 씨(23)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ABT 주역으로 데뷔한다.

ABT와 유니버설발레단에 따르면 서 씨는 9일 오후 7시 반(현지 시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을 맡아 로미오 역의 코리 스턴스 씨와 무대에 오른다. 현재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인 강예나 씨는 ABT에서 1998년 한국인 최초 정식단원으로 입단해 6년간 활동했으나 주역을 맡지는 못했다.

9일 밤 미국 뉴욕의 자택에서 본보와 통화를 한 서 씨는 담담하면서도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소감을 밝혔다.

“어느 날 리허설 스케줄 표를 보니 저와 제 파트너 이름이 올려져 있었어요. 디렉터에게 물어봤더니 ‘로미오와 줄리엣’에 서게 됐대요. 저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덤덤하게 ‘네’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는데.” 서 씨는 “다듬어지지 않은, 어리고 순수한 줄리엣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서 씨의 주역 데뷔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케네스 맥밀런이 안무한 작품으로 대표적인 드라마 발레로 꼽힌다.

미국의 발레 잡지 ‘포인트’는 지난해 1월호에서 ‘2007년 가장 인상적이었던 무용수’로, 월간지 ‘타임 아웃’은 ‘2008년 주목해야 할 발레리나’로 서 씨를 선정하기도 했다. 무용평론가 장광열 씨는 “서희 씨는 클래식과 모던 발레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몸의 아름다움과 동양인 특유의 감수성이 뛰어난 발레리나”라며 “세계적인 발레리나를 객원 주역으로 두는 등 유난히 경쟁이 치열한 ABT에서 주역으로 데뷔하는 것은 한국 발레계의 큰 성과”라고 말했다.

1999년 선화예술학교에 재학하다 미국으로 떠나 워싱턴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에 입학한 그는 국제 콩쿠르에서 여러 차례 입상하며 강수진(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김주원(국립발레단)의 뒤를 이을 차세대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2002년 뉴욕 국제발레콩쿠르에서 은상을 수상했고, 2003년에는 스위스 로잔콩쿠르 입상에 이어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에서 한국인 최초로 그랑프리 대상을 받았다.

2004년 ‘ABT II’에 입단한 서 씨는 1년 만인 2005년 ABT 정식 단원으로 발탁돼 발레단 내에서도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현재 그는 코르 드 발레(군무) 등급에 속해 있지만 이번 무대의 주역 데뷔를 계기로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짐을 싸고 공연장에 가야 한다는 서 씨에게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느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당차다.

“그런 질문 참 많이 듣는데 제 대답은 항상 똑같아요. 다 해보고 싶어요. 그래야 내가 뭐가 제일 좋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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