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여백]행텐코리아 라마나탄 사장

  • 입력 2009년 7월 3일 03시 00분


톡톡튀는 직원들 개성 섞어서
맛있는 ‘칵테일 경영’ 이끌죠

《인터뷰를 위해 발바닥 심벌로 유명한 다국적 캐주얼 의류브랜드 ‘행텐’의 한국법인 행텐코리아 슈브쿠마 라마나탄 사장(42)의 자택을 찾아가는 길. 기자는 라마나탄 사장과의 인터뷰를 영어로 해야 할지 한국어로 진행해야 할지 사뭇 걱정이 됐다. 사전에 행텐코리아 관계자로부터 인도 출신인 그의 한국어 실력이 유창하다는 말을 전해 듣긴 했지만 ‘그래도 외국인 최고경영자(CEO)의 한국어 실력이 인사말 정도겠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집 근처에 가까워질수록 ‘(라마나탄 사장의 취미인) 요트와 칵테일 관련 영어 단어부터 미리 챙겨볼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급습했다. 하지만 기자를 만나자 마자 유창한 한국어로 “어유,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건넨 그의 인사말에서 걱정은 기우였음을 알고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서울 가로지르는 한강, 요트타기에 좋아
한국생활 7년째… 김치찌개 없이 못살아

‘삼청동’ 하면 떠올려지는 으리으리한 대저택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라마나탄 사장이 사는 집은 2층짜리 아담한 단독주택이었다. 집이 비탈진 곳에 위치한 터라 대문 현관에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더니 33m²(약 10평) 규모의 작은 마당이 기자를 먼저 반겼다. 원색의 화려한 꽃과 항아리가 묘한 조화를 이뤘다. 지은 지 20, 30년은 족히 됨 직한 집이었지만 집 안팎은 현대적인 느낌의 가구와 빈티지 풍의 인테리어 소품이 눈에 띄었다.

○ 수많은 결정의 순간, CEO와 요트가 닮은 점

라마나탄 사장은 보통 40대 남성이라면 소화하기 힘든 의상일 수도 있지만 행텐 심볼이 박힌 후드 티셔츠에 짙은 회색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행텐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서핑을 즐기는 10, 20대 남성들이 입던 반바지에서 출발한 브랜드다. 라마나탄 사장도 행텐에 입사하면서 요트, 서핑 등 수상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한국은 여름이 길지 않아 서핑을 즐기기엔 한시적이라 요트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죠. 정작 요트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2년 전부터예요. 동료들이 ‘한국에도 과연 요트 탈 만한 곳이 있냐’고 많이 물어보는데 동서(東西)로 흐르는 한강은 요트를 타기 참 좋은 곳입니다.”

옆에 있던 회사 관계자는 “요트를 배운 지는 2년 밖에 안됐지만 벌써 국내외 요트 대회에 출전할 만큼 실력이 뛰어나다”고 기자에게 귀띔했다.

바람 가는 대로 흘러만 가는 요트가 과연 흥미로울까 싶었다. 그가 생각하는 요트의 매력은 무엇일까. CEO답게 그는 경영에 빗대 요트 예찬론을 밝혔다.

“요트는 아무리 힘든 난관이 닥치더라도 목적지까지 가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지를 정한 후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제어하고 다그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과정이지요. 수많은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CEO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영 환경은 마치 바다와 닮아 있죠.”

그의 요트 사랑 때문인지 부인은 자택 지하 1층 칵테일 바를 배의 선실에서 모티브를 따와 인테리어를 꾸몄다. 이 칵테일 바는 정작 부부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보다 회사 임직원들과의 ‘2차 장소’다. 라마나탄 사장이 술이 약한 터라 한국인 임직원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칵테일을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택한 것.

○ 현장서 배운 한국말이 수준급

“한국 기업 문화가 다소 경직된 데다 외국인 CEO를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패션회사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문화가 중요한 만큼 저와 임직원들과의 벽을 허무는 것이 급선무였죠. 그래서 칵테일 제조법을 배우고 직접 수십 차례 만들어봤죠. 지금은 직원들이 주문하는 대로 칵테일을 만들어 줄 만큼 일류 호텔 바텐더 실력을 갖췄어요. 물론 폭탄주도 만들 줄 알죠.”

그는 기자에게 샴페인과 복숭아 주스를 섞어 달콤하면서도 청량감이 느껴진다는 ‘벨린’이란 칵테일을 추천했다. 이날 기자는 베이지색 바지에 복숭아색 카디건을 입었다.

“다양한 재료를 섞어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는 칵테일은 그 종류가 참 다양합니다. 회사 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조직이라도 부서별로 개성이 천차만별이지요. 이 개성을 잘 섞어야 소비자가 원하는 옷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라마나탄 사장이 한국에 터를 잡은 지는 7년째. 그의 가족은 ‘다문화 가족’이다. 부인은 대만인이고 11세, 6세 난 두 아들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인도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17년간 줄곧 해외 각국을 돌며 다국적 회사에서 일한 라마나탄 사장의 적응력은 상상 이상이다. 한국법인 대표로 부임한 지 1년 만에 임직원들과 업무를 한국어로 처리할 만큼 한국어도 금세 익혔다.

“이화여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3개월가량 배우기는 했지만 업무 때문에 학교 다닐 시간이 없었어요. 그냥 현장에서 부딪히며 한국어를 익히기로 했죠. 한국어뿐인가요.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에서 김치찌개부터 사먹어야 개운합니다.”

CEO만 7년 째인 그가 국내 패션시장에서 인정받는 비결도 철저한 현지화였다. 실제로 그는 2003년 한국인 특유의 ‘덤’ 정서를 겨냥해 옷 한 벌을 사면 같은 값의 옷을 한 벌 더 얹어주는 ‘1+1 마케팅’을 펼쳐 패션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막상 한국법인 대표로 부임하고 보니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소비자 취향도 시시각각 변하는 터라 이를 제때 파악하는 것이 브랜드 성패를 좌우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부터 모든 제작, 유통 콘셉트를 한국시장에 맞게 바꾸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그는 못다 한 요트 이야기가 아쉬웠던 듯 언젠가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요트를 직접 만들어 세계 이곳저곳을 항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도에서 태어나 세계를 향해 돛을 올렸던 그의 마흔두 해 인생은 이미 세계를 항해 중인 듯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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