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을 다시한번]美문단 매료시킨 中작가의 감성

  • 입력 2009년 6월 27일 03시 00분


◇ 기다림/하진 지음·김연수 옮김

스무 살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중국계 작가가 미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펜포크너 상을 두 차례 받았고, 그 두 작품이 모두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쯤 되면 주목도 높은 외국 문학 작품을 찾느라 늘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으로서 관심을 갖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당히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였다.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국경수비를 담당한 경험도 있고 문화혁명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중국 현대사의 산증인이었다. 그런데 중국어로는 한 번도 작품을 써본 적이 없단다. 그는 미국 유학 시절 톈안먼 사태가 일어나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고 그 후에 영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들이 ‘미국 작가들에게 본보기를 보인 문장’이라는 평을 들었다. 미국에서 그처럼 각광받는 작가인데 한국 독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2007년 그의 첫 장편소설인 이 책을 번역해 낼 때 반응을 점치기 어려웠다. 작품의 배경이 지극히 중국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결혼한 아내와 도시에서 만난 세련된 연인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 남자의 일생을 그린 소설이다. 문화혁명기의 중국이 배경이지만 인간의 보편적 감성을 그리고 있어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톈안먼 사태를 정면으로 다룬 ‘광인’에 비하면 거리감이 덜했다. 게다가 평소 작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소설가 김연수 씨가 번역을 맡아 기대를 더욱 높였다.

그러나 우리 독자들이 중국계 작가에 대해 느끼는 묘한 어색함을 극복하는 건 역시나 쉽지 않았다. ‘기다림’의 판매 실적은 결국 ‘나쁘지 않다’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그의 다른 작품들을 잇달아 소개했지만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흔히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지만 한국의 출판시장에선 일본보다 중국과의 심리적 ‘거리’가 더 멀다. ‘미국 문단을 사로잡은 천재 중국 작가’라는 타이틀도 그 ‘거리’를 극복하는 데 별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명사들의 추천도서 목록에 그의 작품이 올라가고 있는 사실을 보면서 그동안 들인 공이 아주 헛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조금씩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정은미 시공사 문학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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