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 자유… 인물 내면묘사에 초점”

  • 입력 2009년 5월 19일 02시 55분


장편 ‘연화’ 국내번역 출간

中 안니바오베이 씨 방한

“창 밖으로 빗소리가 솨솨 들렸다. 마치 어릴 때 종이 상자에서 키우던 누에가 커다란 뽕잎 위를 꿈틀거리며 밤새 조금씩 갉아먹던 소리 같다. 왕성하고도 지속적인 소리, 빗소리.”

중국작가 안니바오베이(본명 안리제·安勵t·35·사진) 씨의 장편소설 ‘연화’(이룸)는 정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문체가 시선을 잡는 작품이다. 티베트의 오지 모퉈로 가는 여행길에서 만난 두 남녀를 중심으로 그들의 과거와 내면을 섬세한 감성으로 풀어낸다. 중국에서 초판만 50만 부를 찍은 그의 대표작이다.

최근 작품의 번역 출간을 계기로 한국을 처음 찾은 작가는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인근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한겨울 사람이 없는 티베트의 산속에서 한 달 정도 지내면서 여행을 다녔고 그때 받은 인상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며 “누구나 느끼는 현실적 억압과 그것을 초월하고자 하는 열망, 두 가지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픈 몸으로 여행 중인 여류작가 칭자오, 오랜 친구이자 연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지로 떠나는 중년남자 샨셩의 여정을 쫓아가는 이 작품은 국내에 소개됐던 다른 중국 소설들과 달리 사회현실이나 역사인식보다는 인물 내면 묘사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는 “중국현대문학 작품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대신 고전소설이나 서양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며 “플로베르 카뮈 뒤라스 같은 프랑스 작가들과 명·청시대의 산문들, 공자 노자 등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은행 광고회사 출판사 등에서 일했던 그는 중국에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1997∼1998년 취미삼아 인터넷 게시판에 단편을 써서 올린 것이 인기를 끌면서 작가로 데뷔하게 됐다. 필명인 ‘안니바오베이’는 이때 별 뜻 없이 지었다고 한다.

안니바오베이 씨는 낯을 가려 동료작가들과의 교류도 즐기지 않고 언론 인터뷰 등 공식행사에도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 문화에 워낙 관심이 많아 출간을 계기로 방문하게 됐다”며 “격동기 한국인들의 내면을 다양하게 그려내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 ‘밀양’ 등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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