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아버지’는 왜 점점 작아지는가

  • 입력 2009년 4월 25일 02시 54분


19세기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로 서민들의 생활을 즐겨 그린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작업복을 입은 남자’. 사진 제공 르네상스
19세기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로 서민들의 생활을 즐겨 그린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작업복을 입은 남자’. 사진 제공 르네상스
◇ 아버지란 무엇인가/루이지 조야 지음·이은정 옮김/508쪽·2만 원·르네상스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어느 날 아버지가 길에서 당한 일을 아버지로부터 전해 듣는다. 아버지 야콥이 거리에서 한 남자와 마주쳤을 때, 그 남자가 야콥의 머리에서 모자를 벗겨내 길바닥에 내팽개친 일이다. 그 남자는 “유대인 주제에 보도 위를 걷고 있느냐”며 야콥을 몰아세웠다. 그 뒤의 일을 궁금해하던 프로이트에게 야콥은 그 남자가 시킨 대로 했다고 털어놨다. 이 일은 아버지를 ‘절대적이고 완벽한 이상형이었던 남자’로 생각하던 프로이트를 실망에 빠뜨렸고 후일 그의 정신분석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프로이트는 이 일화가 없었다면 아들을 아버지의 숙명적인 적대자로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탈리아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스위스 취리히의 카를 구스타프 융 연구소에서 공부했고 국제분석심리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미국 뉴욕에서 심리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다. 책에서 그는 “오늘날 과연 아버지가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부성(父性)의 역사와 현주소를 고찰한다. 아버지가 처한 상황에 대해 그는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에 대한 자식들의 기대치는 높고 엄격하다”고 말한다.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단순한 사랑 이상의 것을 원하고, 아버지가 강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점차 온화한 이미지로 변한 아버지를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나약한 사람으로 여기며 아버지보다 동료를 더 신뢰한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저자는 인류 역사에서 부성이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쳐 왔는지 추적했다. 저자에 따르면 부성의 기원은 문명의 기원과 일치한다. 일부일처제와 가부장제도가 부성의 존재를 드러내는 제도인데 인간이 아닌 어떤 유인원들에게서도 이런 제도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리스 시대는 부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시기다. 그리스 사람들은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우월하다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자식을 생산할 수 있는 선택권은 아버지에게만 있었으며 어머니의 역할은 자식에게 음식물을 제공하는 것뿐이었다.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는 당시 부성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그는 책임감 있는 아버지의 고대적 전형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아버지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불안정성 또한 보여준다. 한 가족 안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집안일을 부인에게 맡긴 채 외부의 세상과 대면하는 것, 즉 전쟁터로 나가는 것이었다.

로마인들은 이런 체제를 더욱 진전시켰다. 대표적 예로 로마법에는 적자로 태어난 자식이라도 아버지가 아들로 인정한다는 공식 의사를 표현해야만 아들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로마의 아버지는 단순한 양육자나 책임자의 역할만이 아니라 자식의 교사이기도 했다. 저자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아버지의 권위는 고대 로마에서 최고 정점에 달했고 그 이후로는 계속 추락하고 있다”고 말한다. 로마시대 이후 현실의 아버지가 가정에서 점차 자신의 영토를 빼앗겼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독교 차원의 금욕적인 명령들로 인해, 다음에는 대학이라는 교육제도가 교사라는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이런 현상이 빚어졌다.

프랑스혁명은 절대 왕권의 지위를 땅으로 떨어뜨리고 교회의 권력을 약화시켰고, 자녀들의 교육을 공공기관에 위탁함으로써 아버지들을 가정에서 밀어냈다. 이어 진행된 산업화는 낮에는 아버지들을 공장으로 빨아들였다가 밤에는 작업장에서 멀지 않은 공동숙소로 이들을 내뱉었다. 가족들과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점점 더 낯선 사람이 되어 갔다. 아버지는 가정의 최고 권위자, 자식의 교육자의 자리에서 점차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추락했다.

저자는 “이제는 아버지의 부재를 대면함으로써 그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봐야 하며 아버지의 애정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에게 부성을 되돌려주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는 부성 회복을 위한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단 “아버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아버지를 찾아야 하고, 아버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 또한 자신이 바라는 부성상을 찾아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우리는 우선 자신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솔직함은 자신이 찾아낸 아버지가 진정으로 원했던 그런 아버지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는 용기다. 거짓된 부성의 모습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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