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햄릿 이야기 통해 중국 현실 풍자했죠”

  • 입력 2009년 4월 23일 02시 58분


20일 서울 대학로 연극배우협회 연습실에서 장광톈 씨(오른쪽)가 연극 ‘위기의 햄릿’에 출연하는 한국 배우들의 연기를 지도하고 있다. 작품의 노래 작곡을 맡은 딸 우웨이 씨가 기타 반주를 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20일 서울 대학로 연극배우협회 연습실에서 장광톈 씨(오른쪽)가 연극 ‘위기의 햄릿’에 출연하는 한국 배우들의 연기를 지도하고 있다. 작품의 노래 작곡을 맡은 딸 우웨이 씨가 기타 반주를 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中 괴짜 연출가 장광톈 씨

한국서 연극 ‘위기의…’ 공연

24∼26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위기의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이야기하면서 실상은 중국의 현실을 매섭게 풍자한 연극이다. 중세 덴마크 왕실에서 벌어진 비극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중국 인민복을 입고 있다.

형인 선왕을 독살하고 왕위와 형수를 함께 찬탈하는 클로디어스(황성현)는 “선왕에 대해 7할은 업적으로 하고 3할은 과오로 삼는다”고 말한다. 마오쩌둥(毛澤東)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평가를 빼닮았다. 클로디어스는 “현재의 덴마크 인민은 영혼운동을 겪으며 정치생활로 피곤한 탓에 안정이 필요하니 이제 우리 업무의 중점은 국가 경제건설”이라고도 한다.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현 중국 지도부를 그에게 비유한 것이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선왕의 복수를 꿈꾸는 햄릿(김균)은 정의의 편일까. 선왕이 죽자마자 동생인 클로디어스와 결혼한 햄릿의 어미 거트루드(백지원)는 장막 뒤에 숨은 신하 폴로니어스를 칼로 찔러 죽인 햄릿을 “무능하고 허위적인 도덕군자”라고 꾸짖는다. 오필리어(이지영)의 비판은 더 매섭다. 그는 자신의 무덤에서 때늦은 사랑을 고백하는 햄릿을 향해 “사랑의 맹세를 정치투쟁의 대가로 저당 잡혔다”며 “선거 유권자를 속일 순 있어도 난 못 속인다”고 쏘아붙인다. 햄릿은 비인간적 자본주의화를 비판하는 구호만 요란할 뿐 구체적 대안이 없는 중국 신좌파의 표상인 셈이다.

날카롭게 중국 현실을 비판한 이 연극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이는 아시아연극연출가워크숍에 초청된 중국의 ‘괴짜’ 연출가 장광톈(張廣天·43) 씨. 상하이(上海)중의대를 중퇴하고 작곡가, 가수, 시인, 연극연출가로 활약해온 그는 ‘체 게바라’(2000년)와 ‘성인 공자’(2004년)로 명성을 얻었다. 전자는 쿠바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를 등장시켜 중국의 빈부격차를 비판한 작품이다. 후자는 문화혁명기엔 린뱌오(林彪)와 공자를 싸잡아 비판하던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을 펼치다 이제 시류에 휩쓸려 공자를 우상화하는 중국인들의 집단주의를 비판한 작품으로 중국 당국의 공연금지 처분을 받았다.

20일 오후 서울 대학로 공연연습장에서 만난 그는 “중국의 문제는 사상이라는 이름의 집단주의에 빠져 독립되고 자유로운 개인을 억압하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나는 어떤 주의에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대본을 보면 햄릿의 등장인물을 이념화한 클로디어스주의(돈과 물질), 거트루드주의(욕망), 폴로니어스주의(기회주의적 처세술) 등이 장의 제목으로 등장한다.

그는 “한국 배우들이 무거운 짐을 싣는 것을 도와달라는 노동자를 아무 대가없이 돕는 것을 보고 카메라로 찍어 중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진짜 자본주의의 맨얼굴을 보고 싶으면 베이징(北京)으로 오라”고 말했다.

‘위기의 햄릿’의 주인공은 차라리 오필리어다. 순수한 사랑의 화신으로 그려진 오필리어가 가장 과격하게 그려진다. 그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시작하는 유명 대사를 읊는 햄릿의 입에 독약과 물을 처넣으며 외친다. “(세상을) 무너뜨릴 용기도 없으면서, 생존을 견뎌내지 못하면서 뭘 하시겠어요? 그저 불평만 터뜨리고, 타인의 과오에 분노하시게요?”

장 씨는 “시류에 편승하거나 명분에 묶이지 않은 채 자신의 진실한 사랑에 충실한 오필리어야말로 위기에 빠진 중국과 세계를 구원할 존재”라고 말했다. 함께 방한한 딸 우웨이(武緯·21) 씨가 극중 사랑 노래의 작곡과 기타 반주를 맡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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