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도 미웠던 어머니 나혜석,그땐 그길이 왜 그리 좁았던가”

  • 입력 2009년 3월 11일 03시 00분


김진 前서울대 교수 生母 이야기 담은 책 펴내

‘비운의 여류 화가’ 나혜석(1896∼1949·사진)의 아들이 그간의 침묵을 깨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그땐 그 길이 왜 그리 좁았던고’(해누리)를 10일 펴냈다.

나혜석의 둘째 아들인 김진 전 서울대 법대 교수는 “생모가 나혜석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왔다”면서 “아버지의 무기력함이 어머니에 대한 상처 때문임을 알게 되면서 어머니가 무척 미웠는데 나이 탓인지 이제는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이자 소설가. 남편 김우영과 프랑스 파리 체류 중 최린과의 염문으로 이혼했다. 이후 화가로서의 활동이 실패하면서 방랑하다가 1949년 객사했다.

네 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야 했던 까닭에 아들은 중학생이 돼서야 생모를 만났다. 교실 밖 복도에 서 있는 남루한 여인이 바로 어머니였다. 화장기 없이 푸석하고 주름진 얼굴에 여러 가닥 흘러내린 머리카락, 구겨지고 구질구질한 회색빛 블라우스.

“아주머니는 누구세요?” “내가 네 어미다.”

재혼한 아버지는 생모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았고 그는 대학 2학년 때 여섯 살 많은 누나에게 부모의 잦은 다툼과 이혼에 대해 들었다. 저자는 누나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어머니도 생각해보면 참 불쌍해. 자신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자유의 대가를 치르는 거지. 우리가 그런 여자를 어머니로 둔 게 불쌍하지. 아버지도 마찬가지고.”

김 전 교수는 이 책에서 “화가이자 문사로 빼어난 재능을 가진 어머니가 그렇게 힘든 삶을 살다 갔다는 것은 당대의 큰 손실”이라면서 “그의 예술적 역량이 맘껏 발휘될 수 있었다면 작금의 사람에게도 기쁜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만년에 어머니와 절친했던 일엽 스님의 아들 일당 스님을 만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불공을 드리던 모습, 자식을 만나고 싶어 몸부림치던 모습을 생생히 전해 들었다”면서 “스님을 붙들고 한바탕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웨스턴스테이트대 법대 교수를 지낸 뒤 퇴직해 현재 샌디에이고에 거주하고 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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