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풍속 이야기 20선]<7>새로 쓴 한국 주거문화의 역사

  • 입력 2009년 1월 30일 03시 01분


《“경북 경주 강동면 양동리 관가정(觀稼亭) 대청의 구조 부재들은 장식이 거의 없는 간결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준다. 주두(柱頭)와 초익공(初翼工)을 사용한 것이 장식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아치형 곡선재를 대들보로 사용해 대공 없이 종도리를 받치는 형식도 상류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구조다. 청백리로 명성을 얻었던 대학자인 우재(愚齋) 손중돈의 사대부적 품성이 느껴진다.”》

집을 완성하는 건 깃들여 사는 사람

건축을 완성하는 주체는 건축가가 아니라 공간 안에 들어가 삶을 짓는 사람들이다.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인 지은이는 머리말에 밝힌 대로 “한국 주거사의 체계를 수립하는 일에 학자로서 인생을 건” 인물. 한국 땅의 주거문화를 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 꼼꼼히 살핀 그는 건축물에 대해 딱딱한 설명을 늘어놓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 공간 안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생생한 분석이 이 책이 전하는 화두다.

위 인용문에서 주두는 기둥머리, 초익공은 소 혀 모양 장식이 하나인 기둥머리 덧댐 나무, 대공은 들보 위에 세워서 마룻보를 받치는 짧은 기둥, 종도리는 마루를 받치는 가로지름 나무를 뜻한다. 전문용어에 대한 주석이 부족한 점은 아쉽지만, 전통 주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하나하나 말뜻을 짚으며 공간의 모양새를 상상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시대별로 나뉜 11개 장의 말미에는 해당 주거유적의 대표적 사례들을 덧붙였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신석기 주거유적,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수졸당 등 수천 년을 오르내리는 안내가 무심히 지나치던 주변 공간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경주 양동마을에 대한 설명에서는 건축물보다 사람을 먼저 들여다보는 저자의 시선이 읽힌다.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씨족마을의 형성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손중돈과 이언적을 필두로 한 두 집안이 이곳에 뿌리내리게 된 사연으로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공간 구성 디테일에 대한 묘사로 연결된다.

“1540년에 건립된 향단(香壇)은 이언적이 경상감사 시절에 아우인 이언괄에게 지어준 건물이라고 전한다. 가까이 세워진 행랑채와 안채가 지극히 좁은 통로로 연결돼 동선을 은밀하게 만들었다. 거대하고 위엄 있는 외양과 달리 내부는 폐쇄적이다. 중앙에 위치한 방에는 이언적의 어머니가 기거했다. 행랑채가 그 앞을 가로막아 외부의 시선을 차단한다. 조선 중기 이후 사대부 주택이 양식적 규범에서 벗어나 건축주의 요구를 반영했음을 보여준다.”

풍성했던 이 땅의 주거문화를 차례차례 확인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커진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 기술한 ‘온돌의 결점’에는 삶의 공간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비효율적 연료 소비, 목재 남벌 문제, 구성원 개별 공간 확보의 어려움 등에 대한 연암의 치밀한 지적은 현대 건축전문가의 분석과 비교해 모자람이 없다.

부록에는 139개 국가지정 주거문화재의 소재지를 간략하게 표로 정리해 실었다. 전국의 전통 주거 유적을 답사하려는 이들에게 유용할 길잡이다. 서울 종로구 평동 경교장에서 저자는 해외 건축양식의 적용 방법을 고민했던 일제강점기 건축가들의 자취를 찾는다. ‘백범 김구가 암살당한 곳’이라는 익숙한 사연을 벗어난 시각이 신선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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