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8년 12월 5일 14시 2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3일(현지 시간) 장보고호의 권영인 박사는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요즘 장보고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권 박사는 한숨이 늘었고, 얼굴엔 불안한 기색이 짙어졌다.
출항 56일째. 찰스 다윈의 역사적인 과학 탐사 항로를 따라가겠다며 미국 아나폴리스에서 항해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돛대가 부러졌고, 배의 엔진도 고장 났다. 날씨 때문에 발을 동동거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탐사팀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배의 공기가 다소 바뀌었다. 긴장감과 두려움이 커진 듯 하다. '거대한 자연 앞에 오만했다'는 회의적인 분위기도 감지된다.
▼ 바다 위에서 보낸 3일
현재 바하마의 섬들을 탐사 중인 장보고호는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3일 동안 항구에 정박하지 못했다. 메인 섬으로 돌아가던 길에 사나운 날씨를 만난 것이다. 바람이 42노트까지 불었다. 보통 폭풍이 불 때 바람이 30노트 가량의 속도로 분다고 한다.
유류저장고 인근 앞바다에서 닻을 내리고 3일 동안 말 그대로 둥둥 떠 있었다. 탐사팀은 예민해졌다. 동아일보 취재팀까지 더해 작은 요트 안에서 5명의 남자들이 생활하다보니 식수마저 바닥이 났다. 성인 5명이 TV도, 라디오도 없는 바다 위에서 하릴없이 파도만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2일 결국 식수가 완전히 바닥났다. 탐사팀은 이날 폭풍 경보가 내려졌음에도 루카야 섬으로 항해를 단행했다. 바람과 파도가 험했지만 다행히 루카야 섬에 별 탈 없이 정박했다. 3일에는 식수와 물자를 보급 받고, 인근 산호섬을 찾아 하얗게 변해버린 산호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 불안, 회의, 두려움
바다에서는 예기치 못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갑자기 필요한 물자가 떨어지고, 날씨가 사나워지며, 배의 어딘가가 고장나버리기도 한다. 항해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은 갑작스런 상황이 벌어져도 자신의 경험과 '감'에 의존한다. 스스로를 믿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대로 행동한다.
그러나 권 박사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20년을 일한 과학자이다. 대학시절 요트부 회원이었고, 아마추어 무선사 자격증과 해기사 면허를 갖고 있을 뿐이다. 수시로 변하는 항해 조건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지도, 자신의 판단을 믿지도 못한다. 자신을 믿지 못하니, 바다가 두렵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 권 박사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원래 동행하기로 했었던 김현곤 선장이 아쉽기만 하다. 태평양을 횡단한 경험이 있는 그가 있었더라면 권 박사는 탐사에 전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까마득한 연세대 요트부 후배 송동윤 씨가 든든하지만 그래도 의지하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권 박사는 "(탐사는 커녕) 살기 바쁜 것 같다"며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슬럼프'에 빠진 장보고호. 취재팀은 권 박사가 꿈을 되새기고 의욕을 다지길 기대하며 4일(현지시간) 바하마를 떠나 한국으로 향했다.
김현수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