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9년 ‘3선 개헌’ 반대 국회 단상점거

  • 입력 2008년 8월 8일 02시 55분


1969년 8월 8일 제71회 임시국회 첫날, 개회식은 열리지 못했다. 야당인 신민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공화당이 당 총재인 박정희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는 개헌법안을 발의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3선 개헌’ 법안이다. 박 대통령은 1963년 12월 제5대 대통령에, 1967년 7월 6대 대통령에 취임해 이미 중임을 했기 때문에 개헌을 하지 않고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전 9시부터 유진오 신민당 총재를 비롯한 소속 의원 35명이 국회 본회의장과 사회석 국무위원석을 점거해 ‘몸으로 개헌을 막겠다’면서 실력저지에 나섰다.

이들은 국회소집 자체를 못하도록 본회의장 앞자리에 있는 의자 집기 등을 단상에 산더미처럼 쌓았다. 단상으로 통하는 좌우 통로도 모두 봉쇄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오전 10시 10분 본회의장으로 속속 입장해 야당 의원들과 대치했다.

신민당은 농성에 앞서 발표한 성명서에서 “공화당이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3선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민족단합을 무너뜨리는 역사적 비극의 시초로서 통탄을 금치 못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공화당은 개헌법안을 내놓으면서 “박 대통령의 강력한 영도 아래 경제 건설과 국방력 강화에 계속 총력을 집중함으로써 1970년대의 위기와 시련에 대비하고 궁극적으로는 민주적인 통일한국을 건설하고야 말겠다는 국민의 의지와 요청에 따라 개헌안을 제출하게 됐다”는 성명서를 냈다.

신민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이효상 국회의장은 바로 다음 날인 9일 오후 국회 본회의 보고도 않고 의장 직권으로 공화당 발의 개헌안을 정부에 직송해 버렸다. 이날 낮 12시 20분 긴급 소집된 국무회의에선 개헌안 공고를 바로 의결했다. 박 대통령이 여기에 서명하고 정일권 국무총리 이하 전 국무위원은 부서(副署)한 다음 즉각 공고했다. 국회에서 농성 중이던 신민당 의원들은 ‘3선 개헌 결사반대’ 플래카드를 들고 의사당 밖으로 나와 가두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미리 대기 중이던 경찰에 밀려 20여 분 만에 의사당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공화당은 이후 개헌 지지선을 확보하기 위해 신민당 의원 3명을 포섭했다. 같은 해 9월 14일(일요일) 오전 2시 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성하고 있던 신민당 의원들을 피해 국회 3별관에서 투표를 했다. 찬성 122표, 반대 0표로 개헌안은 통과됐고 이어 실시된 10월 17일 국민투표에서 개헌이 확정됐다. 박 대통령은 1971년 4월 27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53.2%의 표를 얻어 김대중 후보(45.2%)를 누르고 제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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