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돈만 있으면 누구나 가진다? 그럼 더이상 명품 아니죠

  • 입력 2008년 6월 14일 03시 01분


‘럭셔리,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 저자 데이나 토마스 e메일 인터뷰

그녀는 바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드리아-영화에선 앤 해서웨이-만큼은 아니겠지만,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휴대전화를 받는 데이나 토마스(사진)의 목소리는 정신없었다. ‘뉴스위크’ ‘뉴요커’ ‘보그’ ‘하퍼스 바자’ 등에서 활약한 기자 출신답게 “명품과 관련된 뭔가(something else)를 취재 중”이라는 말과 함께 왁자지껄함이 들렸다.

약속도 정확히 지켰다. “질문지를 보내주면 13일 오전(한국 시간)까지 성심성의껏 답을 하겠다”더니, 딱 시간을 맞췄다. 정말 성심성의껏(with all my heart).

―패션, 명품 관련 잡지에 종사하면서 책에서는 명품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냈다.

“물론 이전 패션지에 기고했던 기사는 가벼운 것도 많았다. 예를 들어, 여배우의 패션 스타일을 거론하는. 하지만 뉴스위크 유럽문화담당 특파원으로 일하며 소규모 가족 중심 명품들이 어떻게 거대기업으로 변모하는지 ‘명품 산업’의 추이를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소비자로서는 명품의 질이 급속도로, 그리고 확실하게 떨어지는(diminishing) 걸 목격했다. 가격은 계속 올라가면서. ‘뭔가 잘못되고 있어’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가, 명품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가 애매하다.

“애매하기보다 실망이나 안타까움이 컸다고 해두자. 명품이라 불리는 제품들이 대량 생산라인에서 조립된 것인데도 터무니없는 가격이 매겨진다. 과거에 수공으로 만들던 예술적인 제품은 명품이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브랜드 로고나 강조하며 찍어내는 제품은 결코 명품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제품 자체가 아니라 대기업의 마케팅 비용에 돈을 지불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정의하는 명품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명품이란 ‘따스한 햇볕 아래 잘 익은 토마토(vine ripe tomato still warm from the sun)’와 같다. 이런 토마토는 100년 전만 해도 아주 흔했지만 요즘에는 구경하기 힘들다. 우리가 지금 먹는 토마토는 지구 반대편에서 덜 익은 채로 수확된 뒤 화학약품으로 처리돼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식탁에 올라온다. 값만 지불하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건 명품이 아니다. 요즘 나에겐…,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끄고 루시(여덟 살짜리 딸)를 안고 드는 낮잠? 이게 명품 아닐까, 호호.”

―책 속에 ‘명품 산업은 본래의 순수함을 잃고, 고객의 눈을 속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말 그대로다. 거대한 명품 산업은 완전함을 추구했던 본연의 자세를 잃었다. 그런데도 가족 소유로 운영될 때와 똑같은 수준인 양 말한다. 난 명품이 다시 순수함을 찾길 소망한다. 공급량은 적어도 최상의 재질과 장인정신으로 제품을 만들던 시절로의 회귀를 꿈꾼다.”

―그렇다면 ‘짝퉁’은 그런 잘못된 산업에 대한 일종의 대항마가 아닐까.

“내 책의 또 하나 중요한 메시지는 가짜 명품을 절대로 사지 말자는 것이다. 그 이유는 책에서 밝혔다시피 가짜 명품으로 번 돈 중 일부는 마약 밀매나 테러자금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그런 당신도 독자에겐 ‘명품 향유자’로 비치는데….

“하하, 나도 미안하지만 틀린 얘기다. 답을 하는 지금도 난 15년 된 하얀색 ‘갭’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다. 심플하고 편하지만 명품 브랜드는 아니지.”

―한국 명품 소비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신의 딸에게 말하는 심정으로….

“명품을 쇼핑할 때 당신의 돈이 기업 주주들의 이익을 채우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길. 다행히 딸은 또래 여자아이들과 달리 명품 이름도 잘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그때 자신만의 원칙이나 기준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다.”

―당신 덕분에 앞으로 명품을 고를 때 영 고민스러울 것 같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I hope so!)”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명품 담당 기자가 파헤친

세계 명품산업의 그림자

◇ 럭셔리,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데이나 토마스 지음·이순주 옮김/424쪽·1만5000원·문학수첩

현재 호주판 ‘하퍼스 바자’의 파리 특파원인 저자는 10년 넘게 명품 패션 등을 담당한 기자. 하지만 그 화려한 조명에 눈멀지 않고 놀랍도록 꼼꼼하게 그림자를 들춰낸다.

이 책에는 명품의 모든 것이 담겼다. 루이비통 구찌 모에&샹동 태그호이어 등을 가진 명품대기업 ‘LVMH’ 수뇌부부터 현재 세계 명품의 50%를 소비하는 일본사회, 중국 시안(西安)의 ‘짝퉁’ 공장까지 헤집는다. 이를 통해 저자는 “현대 중산층 명품 소비자들은 제품이 아니라 환상을 사고 있다”고 지적한다. 명품기업이 향수 사업에 뛰어든 것도 더 적은 비용으로 명품을 소비하고 싶어 하는 대중 심리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 책은 명품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누구에게나 매력적이다. 명품의 허상을 보여주니 거부감을 가졌던 이에겐 당연히 재미를 줄 것이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패션 마니아라면 이름만 대도 짜릿한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이도 많을 듯하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 명품산업의 시장 규모는 1570억 달러(약 164조 원). 옹호하건 무시하건 이제 그 실상을 제대로 볼 때가 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A+ 안내서’다. 국내에도 꽤 알려진 패션 피플이나 브랜드를 몇 군데 어색하게 번역한 점은 거슬린다. 원제 ‘Deluxe, How luxury lost its luster’(2007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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