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문학]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 입력 2008년 3월 29일 02시 59분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하이타니 겐지로 지음·햇살과나무꾼 옮김/348쪽·9000원·양철북

고다니 선생은 골치가 아프다. 갓 졸업한 22세 여선생. 반 아이 데쓰조는 걱정을 넘어 공포에 가깝다.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 친구 개구리를 짓이기고 선생에게도 손찌검. 역시, 데쓰조는 ‘처리장 아이’다.

히메마쓰 초등학교 인근엔 쓰레기 처리장이 있다. 온종일 재를 날려 주민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그 속에 계약직 인부들이 사는 “하모니카를 닮은” 연립주택. 지저분한 처리장 아이들의 보금자리다.

이곳 아이들의 삶은 겉만 보면 ‘끔찍’ 그 자체다. 선생에게도 반말을 퍼붓는 가정교육. 거지 흉내로 급식 빵 구걸은 예사. 하수구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쥐를 갖고 논다. 더러운 비둘기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도쿠지. 더 더러운 파리를 키우는 데쓰조. 선생들조차 얼굴을 찌푸린다.

하지만 고다니 선생은 문득 깨닫는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 사실은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질 않은 건 아닐까. 처리장 아이들의 우상 아다치 선생을 따라 그들의 삶에 다가가 본다. 거기엔 땟자국 속에 감춰졌던 아이들의 순결한 마음이 찬찬히 드러난다.

‘나는 선생님이…’는 일본 청소년문학계 거장으로 손꼽히는 저자의 1974년 작. 아직은 가난과 성장이 공존하던 시절, 도시 서민 주거지에 자리 잡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교사들의 ‘분투’를 담았다. 분투는 다름 아닌, ‘마음을 열고 편견 없이 학생에게 다가서기’였다.

왜 하필 병균 덩어리 파리를 키울까. 할아버지 바쿠 씨의 대답은 여교사의 가슴에 꽂힌다.

“산으로 데려가면 곤충을 기를 겁니다. 강으로 데려가면 물고기를 기르겠지요. 하지만 나는 아무데도 못 데려갑니다. 이 녀석은 쓰레기가 모이는 여기밖에 모르지요. (…) 불쌍한 아이니까 귀여워해 달라는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도 사람의 자식이니까 사람 친구가 있었으면 싶은 거예요. 데쓰조는 어엿한 사람의 자식입니다.”

남의 나라 옛 시절 얘기. 하지만 울림은 크다. 함께 파리를 키우며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는 고다니 선생, 대꾸 한 번 없던 데쓰조가 처음으로 입을 열던 날, 바쿠 할아버지의 옛 친구 ‘조선인 김용생’ 이야기, 학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받아들인 지진아 미나코와의 예정된 이별…. 곳곳마다 읽는 이의 눈시울을 붉어지게 한다.

뭣보다 이 책은 어린이 성장기가 아니다. 아이들을 통해 어른들이 배운다. 앞에 서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옆에 앉아 함께 배우는 마음. 아이들은 그 진심이 전해질 때 비로소 고개를 든다. “문제아도, 장애아도, 그리고 선생님도. 모두 고뇌하는 인간”이니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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