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칸막이’ 걷어내자… 지역 대학, 글로벌 R&D 거점 변신

  • 동아일보

G-LAMP 사업단 협의회
경북대, 전공 다른 36명 연구진 모여… 수학자가 생태예측 모델링 수행
전공 벽 허물고 주제 한개 집중
‘대학기초연구소지원’이 밑거름… 연구자 심리-물리적 안전망 역할
중점 테마 연구소 설립해 교류도

대학별 대학기초연구소 지원 사업 운영 현황. 위 이미지는 2023∼2024년에 선정된 G-LAMP 사업단 14곳의 주요 운영 현황을 구성한 이미지입니다. G-LAMP 사업단 협의회 제공
대학별 대학기초연구소 지원 사업 운영 현황. 위 이미지는 2023∼2024년에 선정된 G-LAMP 사업단 14곳의 주요 운영 현황을 구성한 이미지입니다. G-LAMP 사업단 협의회 제공
대구의 경북대학교 캠퍼스에서는 생명과학, 의약학, 물리학, 수학, 지구과학, 화학 등 서로 다른 전공의 교수와 연구원들이 함께 연구한다. 과거라면 각자의 연구실에서 개별 과제에 몰두했을 이들이지만 지금은 전공의 벽을 허물고 ‘진화’라는 하나의 주제로 융합 연구진을 구성해 머리를 맞댄다. 전임교원 19명과 박사후연구원 17명이 함께하는 이 연구진은 물리학자가 생물 적응의 물리적 법칙을 분석하고 수학자가 생태 예측 모델링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진화생물학적 적응 요인을 발굴하고 탄소(CO₂) 저감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도전적인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통합을 넘어 융합 연구로 전환되고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대학 기초과학 연구가 환골탈태하고 있는 그 중심에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대학기초연구소지원(G-LAMP)’ 사업이 있다. 이 사업은 기존의 파편화된 소규모 과제 중심 지원에서 벗어나 대학이 자율적으로 거대 연구소를 구축하고 세계와 경쟁할 수 있도록 ‘기초체력’을 길러주는 데 방점을 둔다. 대학들은 학과 간 칸막이를 과감히 걷어내고 ‘중점 테마 연구소’를 설립해 신진 연구 인력과 국내외 석학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선도적 지식을 창출하는 글로벌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실제로 G-LAMP 사업에 참여한 대학들은 글로벌 기초과학 무대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아주대학교는 물질·에너지 과학 분야에 승부수를 던지며 ‘차세대에너지과학연구소’를 필두로 미국 뉴욕주립대 환경임학대학(SUNY ESF)에 해외 분교를 설립하는 파격을 시도했다. 대학과 연구소, 기업, 해외 대학이 촘촘하게 연결된 이 다층적 글로벌 협력 체계는 신진 연구자들이 국경을 넘어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역시 전임교원 25명과 박사후연구원 30여 명이 공통 데이터 인프라를 활용해 영향력 지수 상위 1% 및 10%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고 있으며 14개국 25개 기관과 국제 공동 연구를 활발히 수행 중이다. 부산대학교 또한 ‘미래지구환경연구소’를 통해 국립수산과학원 등과 손잡고 미세 플라스틱, 탄소중립 등 지구적 문제 해결에 앞장서며 글로벌 수준의 연구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수도권 집중화 현상 속에서 G-LAMP 사업이 지역 대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사실이다. ‘5극 3특’ 체제에 발맞춘 지역 대학들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 든든한 지원 등으로 우수한 신진 연구원들을 유치하며 우수 인재의 ‘탈(脫)지방’을 막고 지역 균형 성장의 발판이 되고 있다. 강원대학교는 ‘면역 노화’를 테마로 고가의 첨단 장비를 한곳에 집적화하고 연구 몰입 환경을 조성한 결과 6000억 원 규모의 염증 치료제 기술이전이라는 큰 성과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성장한 석·박사급 인재들은 수도권으로 떠나지 않고 지역 바이오산업을 이끌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립부경대학교는 ‘물 순환’을 테마로 기존 11개 연구소를 3개의 정예 연구소로 통폐합하는 과감한 혁신을 단행했다. 체질 개선은 곧바로 성과로 이어져 외부 과제 수주액이 1억6000만 원에서 25억5000만 원으로 15배 이상 급증했고 이곳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지역 연구기관에 안착하며 ‘교육-연구-정주’로 이어지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지역 산업과의 밀착형 연구도 활발하다. 경상국립대학교는 삼성디스플레이, KPX케미칼 등 기업들과 손잡고 기술 협업에 나섰으며 3000㎡가 넘는 전용 공간과 파격적인 펠로우십 지원을 통해 연구자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마련했다. 조선대학교 또한 광주·전남의 인구 특성을 반영한 ‘노화 극복(Well-aging)’ 연구에 집중하며 산·학·연·관 협력 목표를 125% 초과 달성하는 등 지역 맞춤형 헬스케어 산업을 견인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대학이 지역의 우수한 연구 인력 양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R&D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주요 성과로는 △국립창원대: 국제 학술지에 Q1 논문 49편 게재, 국내외 특허 17건 및 기술이전 10건 달성 △서강대: 양자 산란 현상에 의한 분자구조 변화 세계 최초 규명 및 국제 연구 네트워크 구축 △연세대: 세계 최초 2차원 물질 측정 기법 개발, 성과교류회 10회 개최 △전남대: 포닥 정기 세미나 8회 개최, 국제 공동 연구 및 MOU 체결 7회 △전북대: 국제 학술지 게재 및 인용지수 상위 5% 이내 논문 선정, 국제 공동 연구 및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 △충북대: 물질·에너지 분야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 확대, 재료·물리화학 분야 학술지에 논문 6편 게재 등이 꼽힌다.

이러한 성과에 대해 이현식 전국 G-LAMP 사업단 협의회장(경북대 G-LAMP 사업단장·사진)은 “G-LAMP 사업을 통해 젊은 연구자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도전적인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심리적, 물리적 안전망’이 구축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들과 함께 지역 대학이 글로벌 수준의 연구 거점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인프라와 연구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2026년 G-LAMP 사업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교육부는 4개의 신규 대학을 추가 선정해 연구의 저변을 넓히는 한편 사업의 내실화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단순한 양적 확대를 넘어 대학의 자율성과 특성을 살리고 대학 내 연계·협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해숙 교육부 고등평생정책실장은 “G-LAMP 사업은 기초과학 분야의 핵심 인재를 키우고 청년 연구자들에게 안정적인 연구 기회와 다양한 교육 경험을 제공하는 중요한 기반”이라며 “대학의 자율성과 특성을 살린 기관 단위 묶음 예산 지원(블록 펀딩)을 확대해 기초과학 연구 기반을 강화하고 대학 내 연구 인력, 시설, 장비 등의 결집을 통해 기초과학 분야의 지속가능한 ‘공동 연구 플랫폼’도 구축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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