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품 낙관 주인 금세 알수있죠”

  • 입력 2008년 3월 17일 02시 53분


韓中日 서예가-화가 6만명 署名사전 나와

옛 문인들은 작품의 내용이나 흥취에 따라 다양한 호를 새겨 낙관을 찍었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사용한 호만 해도 200여 개에 이른다.

옛 서화, 문집, 간찰(편지)에 작가의 이름 없이 낙관만 덩그러니 찍혀 있거나 처음 보는 호만 있을 때 누구의 작품인지 궁금하다. 낙관은 작품의 진위를 가늠할 수 있는 변수이기도 하다. 이럴 때 활용할 수 있는 사전이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추사를 비롯해 명필가 석봉 한호(1543∼1605), 중국 진나라의 서예가 왕희지(307∼365), 일본 최초 수묵화가 셋슈(雪舟·1420∼1506) 등 한국 중국 일본의 문인이나 화가 등 명인(名人) 6만 명의 호, 자, 별칭 20만 개를 한데 모은 ‘한중일 서명사전’이다. 중국 연변대 예술대학 객원교수인 문창호(53) 씨가 수년간 사재를 털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다.

추사가 보낸 간찰에 적힌 ‘노완(老阮)’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추사의 본명과 생몰연대, 출생지, 주요 업적을 확인할 수 있다. 파격적 화풍으로 유명한 청나라 화가 주탑(1624∼1703)은 팔대산인(八大山人)이라는 호로만 알려져 있지만 이 사전에는 인옥(人屋), 주중계(朱中桂) 등 25개의 별칭을 실었다. 2885쪽에 달하는 이 사전은 두 손으로 들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고 방대하다.

이 사전에는 문 교수의 집념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 이 사전을 보고 있으면 ‘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 흙을 퍼 날라 산을 옮겼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 떠오른다.

문 씨는 대학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한 ‘정통파’는 아니다. 통계학을 전공한 뒤 대기업을 다녔으며 고미술이 좋아 간찰과 서화 3000점을 수집하다가 ‘보는 눈’이 생겼고 감정 실력도 수준급이 됐다.

“고미술품에 찍힌 낙관의 주인을 모르는 소장자가 많아 안타까웠어요.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닌데…. 하지만 그 많은 호와 서명을 한데 모으는 일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사전을 만들겠다고 하자 무모한 일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소리부터 들렸다. 하지만 문 씨는 “‘그렇다면 나라도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마침 2002년 명지대에 문화예술대학원 예술품감정학과가 생기자 문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늦깎이로 공부하며 본격적으로 사전 편찬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해 한국고미술감정협회라는 출판사를 설립했다.

문 교수는 사전 편찬 작업이 1∼2년이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홀로 고금의 문헌을 뒤지고 20만 개에 이르는 항목을 빠짐없이 정리하는 동안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두문불출했다.

사전 편찬에 들어간 비용만 해도 5억5000만 원. 시골의 땅 6000평을 팔고 서울의 37평짜리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린 것도 모자라 사채도 썼다.

올해 3월 드디어 사전이 나왔다. 비용이 모자라 350부밖에 찍지 못했다. 한 권에 30만 원. 누가 이 사전을 살지도 막막하다. 그래도 문 씨는 뿌듯하다. 묵묵히 기다려 준 부인과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 고맙기만 하다.

“우리 고미술품 감정의 발전을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장 작품이 누구 것인지 알아야 가치를 가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태어나서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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