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켄트 나가노“음악은 문화의 중재자, 지휘자는 번역가죠”

  • 입력 2008년 3월 13일 03시 03분


“메르시 보쿠!”

캐나다 몬트리올 심포니의 명(名)지휘자 켄트 나가노(57) 씨는 8일 밤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청중에게 프랑스어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몬트리올 심포니는 ‘프랑스 교향악단보다 더욱 프랑스 색채를 잘 표현하는 오케스트라’로 알려진 악단. 이 심포니는 4월 18, 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11년 만의 내한공연을 앞두고 있다.

몬트리올 심포니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나가노 씨를 뉴욕에서 만났다. 진은숙 서울시향 상임작곡가의 신작 ‘로카나’를 카네기홀에서 미국 초연을 한 직후였다.

일본계 미국인인 나가노 씨는 현재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뮌헨 바이에른주립오페라극장에서는 독일어로, 캐나다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는 프랑스어로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진행한다. 영국 할레오케스트라(1991∼2000), 리옹 국립오페라극장(1988∼1998), 미국 로스앤젤레스 오페라극장(2001∼2006),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2000∼2006)의 음악감독을 지냈다.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음악이야말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언어”라고 말했다.

“지휘자는 다국적 문화를 중재해 주는 번역가입니다. 제 선조는 100년 전 일본에서 캘리포니아로 왔고, 저도 캘리포니아 모로 만에서 자랐어요. 또 20년 전부터 유럽에 살고 있어요. 제 딸은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녔고, 제 아내는 독일 스위스 프랑스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뮌헨과 몬트리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죠. 제가 유럽 문화의 일부가 됨으로써 세계 곳곳에 문화를 전달하려 합니다.”

그는 “투명하고 황금빛 컬러의 사운드를 지닌 몬트리올 심포니는 25년간 심포니를 이끌었던 샤를 뒤투아의 영향으로 프랑스 색채가 물씬 묻어난다”며 “그러나 내년 75주년을 맞는 몬트리올 심포니는 주빈 메타, 라파엘 프뤼베크 데 부르고스 등 명지휘자들이 독일과 러시아, 스페인 레퍼토리도 개발해 왔기 때문에 북미에서 유럽적 전통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교향악단”이라고 설명했다.

나가노 씨는 베토벤, 브루크너, 말러 등 수많은 클래식 음반을 녹음해 왔지만, 1983년 메시앙의 오페라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코’를 세계 초연한 데 이어 2000년에 잘츠부르크페스티벌에서 카이아 사리아호의 ‘먼 곳에서의 사랑’, 존 애덤스의 ‘클링호퍼의 죽음’을 초연하는 등 꾸준히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용기 있는 도전을 해 왔다.

특히 그는 한국의 작곡가 진은숙 씨와 오랜 인연을 맺어 왔다. 1999년 런던 심포니가 위촉한 ‘시간의 거울’, 2001년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위촉한 ‘바이올린 협주곡’, 2007년 독일 뮌헨 바이에른주립극장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진 씨의 대표작 대부분이 나가노 씨의 위촉과 초연으로 이뤄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의 공연이 추진되고 있으며, 진 씨의 뉴욕 데뷔작인 ‘로카나’는 나가노 씨를 위해 특별 헌정됐다. 나가노 씨는 “현대음악을 하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18∼19세기의 위대한 작품들을 많이 연주합니다. 요즘엔 그 이전의 음악도 많이 연주하지요. 그런 작품도 당대에는 현대음악이었습니다. 현대의 작품이 내일의 유산이 됩니다. 다음 세대에 이러한 훌륭한 전통을 이어주기 위해서라도 작곡가들의 창작을 존중해 줘야 합니다.”

작곡가 진 씨는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감정의 기복 없이, 정확한 계산으로 작곡가의 의도를 표현해 내는 그의 현대음악 해석력은 놀랍다”고 말했다.

뉴욕=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몬트리올 심포니 내한 공연은…

4월 18일 오후 8시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 라벨 ‘볼레로’, 19일 오후 5시 드뷔시 ‘라 메르’,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 협연),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 1만∼20만 원. 1588-7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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