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한 한국서 바둑으로 인생 승부”

  • 입력 2008년 1월 17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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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제기 디아나 씨는 한국 음식이 입에 맞는다고 한다. 김치찌개와 같은 매운 음식이 헝가리에 많기 때문이라는 것. 가장 즐기는 음식은 돼지갈비다. 사진 제공 월간바둑
코제기 디아나 씨는 한국 음식이 입에 맞는다고 한다. 김치찌개와 같은 매운 음식이 헝가리에 많기 때문이라는 것. 가장 즐기는 음식은 돼지갈비다. 사진 제공 월간바둑
벽안의 프로기사 헝가리 출신 디아나 씨

《그와 통화한 것은 오후 11시가 넘어서였다. 서울 강남구 선릉역 근처 양재호바둑도장에서 오후 10시까지 바둑 공부를 한 뒤 서울 왕십리에 있는 자취방으로 귀가한 시간이었다.

“하루 10시간 이상 바둑과 씨름하고 있어요. 도장 학생들과 바둑 두고 복기하고 사활 문제 풀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몰라요.”

헝가리 아가씨 코제기 디아나(25) 씨. 그는 2005년 한국에 바둑을 배우러 왔다.

그는 올 초 경사를 맞았다. 한국기원이 ‘유럽 바둑 보급에 매년 노력한다’는 조건으로 그에게 프로기사 특별 입단을 시켜준 것.

“아직 실력은 부족하죠. 입단 전 한국기원 연구생 2조에 속해 있었어요. 연구생에서 한 15등 정도 한 셈이죠. 그러나 흐트러짐 없이 지금처럼 2년 정도 공부하면 여성 프로 기전에서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기대해요.”

그는 유럽에선 정상급 기사였다. 유럽의 수많은 아마대회에서 우승권을 넘나들었다. 유럽에서 17세에 아마 6단에 오른 것은 남녀 통틀어 디아나 씨가 처음이었다.》

바둑을 배운 건 9세 때. 아마 초단 실력의 아버지는 오빠에게만 바둑을 가르쳤다. 여자는 바둑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그는 흰 돌과 검은 돌의 조화가 이뤄내는 세계에 흥미를 느꼈다. 아빠와 오빠가 두는 바둑을 어깨너머로 보며 계속 질문을 쏟아냈다.

마침내 디아나 씨의 열정에 손을 든 아빠는 딸에게 바둑을 가르쳤고 1년 반 만에 둘은 맞바둑이 됐다. 영어 바둑책밖에 없던 시절이라 영-헝가리 사전을 찾아가며 책을 독파했다. 영어 실력도 덤으로 키울 수 있었다.

“알 듯 모를 듯한 세계에 관심이 끌렸죠. 흑백만 있을 뿐인데 알면 알수록 더 심오한 재미를 주는 점에 매료된 거죠.”

그는 15세 때인 1998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에서 9위에 올랐다. 어린 여학생이 좋은 성적을 낸 것을 보고 일본 프로기사가 일본 유학을 권했다. 그는 부모에게 연락했지만 “고등학교는 마치고 시작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헝가리로 돌아간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난 뒤에도 2년간 허송세월했다. 그는 이 공백을 아쉬워한다.

“그때 일본에서 눌러앉았으면 더 일찍 프로기사가 됐을지 모르죠. 그러나 깔끔하고 친절하지만 거리감이 느껴지는 일본과는 달리 정이 많고 화끈한 한국이 헝가리 사람에겐 더 맞는 거 같아요.”

그는 2003년 한국에서 열린 아마대회에서 알게 된 명지대 바둑학과 남치형 교수를 통해 명지대 바둑학과에 입학했다.

“한국에선 어릴 때부터 좋은 스승과 책을 갖고 공부하는데 그게 없었던 게 아쉬워요. 사활을 계산하는 것은 어릴 때 기초를 잡지 못해 아직도 어려워요.”

디아나 씨는 두터운 싸움바둑을 좋아한다. 어려운 수읽기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내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그는 비슷한 기풍인 최철한 9단과 작고한 일본의 가토 마사오 9단을 좋아한다.

입단 후 부모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입단도 했으니 대학을 마치면 귀국하라”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바둑으로 인생 승부를 걸어볼 생각입니다.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입단만 하고 돌아갈 순 없죠. 세계 정상급 여성기사인 루이나이웨이 9단이나 박지은 8단 등과 대등한 승부를 펼치는 게 꿈이에요.”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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