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줄테니 요청해라” 흥덕사에 열흘만에 돈 지급

  • 입력 2007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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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 계획한 흥덕사  19일 동국대 이사장 영배 스님이 세운 울산 울주군 흥덕사(뒤쪽 건물) 입구에 ‘흥덕사 중창불사 조감도’가 서 있다. 검찰 조사 결과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이 절에 특별교부금을 지원하도록 행정자치부에 압력을 넣은 사실이 확인됐다. 울산=정재락  기자
확장 계획한 흥덕사 19일 동국대 이사장 영배 스님이 세운 울산 울주군 흥덕사(뒤쪽 건물) 입구에 ‘흥덕사 중창불사 조감도’가 서 있다. 검찰 조사 결과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이 절에 특별교부금을 지원하도록 행정자치부에 압력을 넣은 사실이 확인됐다. 울산=정재락 기자
■ 변씨, 동국대이사장 세운 절에 예산 편법지원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동국대 이사장인 영배 스님이 세운 울산 울주군 흥덕사에 정부 예산을 지원하기 위해 행정자치부와 울주군에 다각도로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행정자치부와 흥덕사의 소재지 지방자치단체인 울주군 측이 지원이 어렵다는 뜻을 밝혔는데도 집요하게 특별교부금 지원을 압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영배 스님은 해당 지자체보다 먼저 특별교부금 지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그에 대한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19일 청와대 대변인이 밝힌 것처럼 올해 4월 변 전 실장은 흥덕사에 특별교부금을 지원하도록 행자부에 ‘협조요청’을 했다. 실무는 변 전 실장의 지시를 받은 대통령사회정책비서관실의 K 행정관이 맡았다.

K 행정관은 행자부 관계자에게 “흥덕사에 특별교부금을 지원해 달라”는 변 전 실장의 지시를 전달했다. K 행정관은 지난해 행자부에서 청와대로 파견된 뒤 행자부 업무조율을 맡고 있다. 요청을 받았던 행자부 담당자는 “당시 사찰은 특별교부금 지원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K 행정관은 “그렇다면 별다른 방법이 없겠느냐. 다시 고려해 보라”며 다시 요청했다.

재차 압력을 받은 행자부 담당자는 5월 초 울주군에 “특별교부금 10억 원을 줄 테니 울주군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을 해 보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흥덕사라는 말을 특별히 지칭하지 않고 지역현안사업을 신청하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울주군 관계자의 말은 조금 다르다.

이날 울주군 담당자는 “당시 행자부로부터 ‘지난해 태풍 에위니아로 인한 상북면 흥덕사 주변의 피해 복구를 위한 특별교부금을 요청해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행자부 측에서 ‘흥덕사’를 구체적으로 거명했다는 것이다.

울주군 담당자는 행자부의 통보에 대해 “태풍 피해 복구도 끝났고 해서 특별히 할 만한 사업이 없다”고 했지만 행자부 측에서는 “다른 곳이라도 필요한 사업이 있는지 알아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에 따라 울주군은 절에서 2km가량 떨어진 상북면 양등교를 다시 짓기 위해 특별교부금 15억 원(총사업비 51억 원)을 지원해 달라고 5월 13일 행자부에 요청했다. 이 특별교부금은 불과 10일 뒤 10억 원이 배정돼 울산시를 통해 울주군에 지원됐다.

울주군의 관계자는 “지역현안사업 등을 위한 특별교부금은 지자체가 먼저 요청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라며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행자부가 먼저 지자체에 지시했고, 지원 요청을 한 지 10일 만에 예산이 배정됐다는 점에서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영배 스님은 이미 특별교부금이 나온다는 사실을 4월 초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변 전 실장과 영배 스님이 특별교부금 문제를 먼저 상의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울주군 고위 관계자는 “영배 스님이 행자부로부터 (특별교부금을 신청하라는) 통보가 오기 전인 4월 중순 울주군수를 찾아와 ‘흥덕사 정비사업을 위해 특별교부금을 신청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교부세가 나온 뒤 특별교부금이 양등교를 짓는 데 쓰인다는 사실을 안 영배 스님이 다시 군수를 찾아와 “특별교부금이 다른 곳으로 갔으니 울주군비를 이용해 흥덕사 불교문화사업(불교 미술관)을 지원해 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울주군 문화관광과 담당공무원이 6월 흥덕사를 찾아가 영배 스님으로부터 미술관 건립 계획을 청취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울주=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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