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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8월 16일 23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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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씨는 16일 오전 8시55분발 비행기로 남편(김석기 전 중앙종합금융 사장)과 두 아이가 살고 있는 홍콩으로 떠났다. 윤 씨는 출국 직전 공항에서 30여 분간 전화인터뷰를 했다. 그는 비교적 차분히 이야기 했지만 두세차례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언론이 취재에 들어간 사실은 언제 알았나.
"(홍콩에 머물고 있다가 내한해) 13일 3박4일 과정으로 영성수련 들어갔다. 일체 소지품을 갖고 갈수 없는데 감기 걸린 애들이 걱정돼 오후 4시 무렵 잠깐 휴대폰을 돌려받아 전화했다. 그런데 기자들 전화며 문자 메시지가 엄청나게 와 있었다. 예감이 이상했다. 내 사무실 직원이 남긴 음성 메시지를 들어보니 급히 전화 달라면서 기자들이 내 학력을 물어본다고 했다."
-스스로 거짓 학력 사실을 밝힌 이유는?
"(기자들이 학력을 물어본다는) 메시지를 듣고 마음이 더 급해졌다. 13일 최일도 목사님 말씀의 두 주제가 '거짓의 옷을 벗어라'와 '나는 누구인가'였다. 눈물이 쏟아졌다. 30년을 기만하고 살아온 내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밤 11시 쯤 남편에게 전화로 상의했다. 어떻게 밝힐지도 고민했다. 잘한 일도 아닌데 기자회견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 14일 내 홈페이지에 글을 띄웠다. 내 홈페이지는 사람들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거기에 글을 올리면 서서히 얘기가 흘러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큰 사회적 이슈가 될지 몰랐다."
-남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
"이 일이 불거졌을 때 남편과 아이들이 가장 걱정됐지만 남편도 용기를 줬다. 남편을 비롯 가까운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이와 관련, 윤씨와 절친한 박정자씨는 "8,9년 전쯤 석화가 부끄럽다면서 이대를 다니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나 뿐 아니라 돌아가신 강원룡 목사 등 절친했던 사람들은 알고 있던 사실"이라며 "이화여대 생활미술과에 시험을 쳐서 합격은 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못 다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30년 전 '철없던 시절의 일'이라고 했지만 2년 전에도 인터뷰에서 이대 출신이라고 했던데. (윤씨는 2005년 신동아 인터뷰에서 "'쟤네들(다른 배우들)은 공부 못했으니까 드라마센터 갔지 나는 그래도 이대 출신이야'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다보면 의도가 잘못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 인터뷰 때 그 기자가 뉴욕 유학 과 이화여대 다닌 이야기를 물어봤는데 두 이야기가 합쳐진 것 같다. 기자가 이대 다닌 사실을 물었을 때 다녔다고 거짓말한 건 사실이고 잘못했다. 내가 한 말은 '나는 너네들처럼 연극영화과(드라마센터) 출신은 아니지만 더 좋은 뉴욕대 간다'라는 뜻이었다."
-뉴욕대인가 뉴욕시립대인가.
"두 군데를 다 다녔다. 솔직히 뉴욕대는 너무 다니고 싶었지만 당시 형편으로는 학비가 너무 비쌌고 나는 영주권이 있어 뉴욕시립대는 싸게 다닐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학교끼리 학점 교환프로그램이 많아 뉴욕시립대를 다니면서 뉴욕대 강의도 몇 과목 들었다."
윤씨가 1984년 번역한 '신의 아그네스' 희곡집에는 역자 약력으로 "이화여대 생활미술과 졸업, 현 뉴욕대학 드라마 과 재학 중"이라고 적혀있다.
-홍콩에 머무는 이유는(윤씨는 지난해 1년간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가서 사회복지를 공부할 거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처음엔 미국 연수를 갈 생각이었다. 학위과정은 아니어도 공부를 더 해보고 싶었다. 스탠포드와 컬럼비아대에서 모두 (오라고) 얘기가 됐는데 (떨어져 살고 있는) 애 아빠 입장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연수를 가지 않고 그냥 애 아빠랑 애들이 있는 홍콩으로 안식년을 갔다.
-지금 심정은.
"부끄러움은 남아있지만 털어놓으니 좀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그래도 더 낮아지고 자중할 생각이다. 당분간 작업(공연)은 못할 것 같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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