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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6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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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표류한 주인공 노빈손이 어려운 환경을 헤치고 지혜롭게 살아나가는 이야기를 삽화와 함께 소개한 책이다. 노빈손의 생존 방법을 통해 과학의 원리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새로운 개념의 청소년 교양과학 서적이었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일부에서는 “잘 팔릴 수 있을까” 하고 우려했다. 그러나 기획자인 박철준 뜨인돌 부사장은 내심 “잘 하면 10년 정도 먹고 살 수 있겠지” 하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고 주변에선 찬사가 쏟아졌다. 특히 중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치솟자 이번엔 노빈손을 전면에 내세워 ‘노빈손의 아마존 어드벤처’, ‘노빈손의 남극 어드벤처’와 같은 시리즈물을 출간했다. 여기서 노(No)빈손은 ‘빈손’이 아니라는 뜻. 빈손으로 무인도에 표류했지만 주변의 환경을 잘 이용해 살아남았으니 결국엔 빈손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노빈손 시리즈는 지금까지 21종이 나와 약 300만 부가 팔렸다. 중학교 교내 도서관 대출도서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책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중학생 사이에선 노빈손 팬클럽도 생겼다. 이 시리즈는 일본 중국 대만 태국으로 수출됐고 독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수출 계약도 진행 중이다. 노빈손 시리즈는 최근 나온 책 가운데 가장 성공한 기획물의 하나로 꼽힌다. 성공 요인은 뛰어난 아이디어로 틈새를 찾아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냈다는 점이다.
박 부사장의 설명. “청소년에게 과학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도 당시에는 단순 소개 형식이거나 어려운 내용의 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노빈손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그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살을 붙였죠. 흥미로운 어드벤처 형식으로 내용을 이끌어나가면서 청소년들에게 과학이 우리 주변의 일상 속에 녹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좋은 기획 시리즈는 출판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출판문화에도 큰 도움이 된다. 사계절출판사의 12권짜리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는 이 시대 기획 시리즈의 전범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역사책 문화재책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뒤바꿔 놓으면서 이 시대의 교양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노빈손을 기획한 박 부사장도 이 시리즈를 “기획의 압권”이라고 극찬한다. 틈새시장을 찾아내 새로운 형식을 도입한 것도 좋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성공 비결은 출판사와 기획자의 집요한 정성이다.
많은 출판인은 좋은 기획을 꿈꾼다. 기획 시리즈는 낱권짜리 책보다는 출판인 자신의 포부를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획이라고 다 좋을 수는 없다. 아이디어와 노력, 그리고 시장에 대한 판단력 등이 잘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노빈손이 나온 지 10년이 된다. 박 부사장은 지금 어떤 기획을 하고 있을까.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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