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큰소리는 소리가 안들린다”…‘면벽침사록’

  • 입력 2007년 6월 9일 03시 03분


◇ 면벽침사록/류짜이푸 지음·노승현 옮김/415쪽·1만3000원·바다출판사

‘면벽(面壁)’은 속세를 떠난 선사 선객들의 수련법이다. ‘침사(沈思)’는 ‘조용히 정신을 모아 깊이 생각한다’는 뜻.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으로 미국 망명길에 오른, 그리고 여전히 고향땅을 밟지 못한 류짜이푸의 인간과 역사, 중국과 세계에 대한 성찰이다.

이 책은 그래서 명상적이다. 문화혁명에 절망하고 전체주의에 환멸을 느껴 온몸을 던진 반체제 문예이론가지만 그는 독설로 체제 전복을, 반정부 시위를 선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한다. 자신 속의 참된 자아(自我)로, 천지개벽 이전의 혼돈 속 순수함으로 회귀할 것을 조용히 설득한다.

그가 보는 세상은 지나치게 시끄럽고 번잡하며 세속화돼 있다. 그래서 인간은 광활한 대우주의 섭리, 대자연의 조화를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저자는 세상과 인간을 개조하려는 어떠한 인위적인 노력과 의지에 반대한다. 공산주의 중국의 지식인 개조 논리는 하북 삼절(三絶)인 노준의(盧俊義)를 핍박하여 산으로 들어가도록 하려고 음모와 계책을 꾸미는 ‘수호지’ 주인공들의 그것과 같다고 꼬집는다. 그런 면에서 그는 정의로운 역사의 길로 인류를 견인해야 한다고 믿었던 헤겔 마르크스류의 역사주의를 비판한 칼 포퍼와도 닮아 있다. 하지만 저자가 기대는 것은 자유주의가 아닌 노장의 도덕경이요, 육조 혜능선사의 선맥(禪脈)이다.

그의 박식함은 놀라울 정도다. 칸트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슈펭글러 푸코 루쉰 노자 혜능 등 동서양의 문(文) 철(哲) 사(史)를 자유롭게 활보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언어나 문자가 아니다.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대음희성·大音稀聲)”고 말한 노자요, “우주는 말이 없고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그것은 오히려 더 비교할 만한 것이 없는 큰 소리”라는 깨달음이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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