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서 난 무명배우였다”…‘극락도 살인사건’ 박해일

  • 입력 2007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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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남자.’

배우 박해일은 한마디로 그렇게 정의된다.

화면보다 훨씬 호리호리한 몸에 길고 가는 팔다리를 가진 이 남자, 진지하게 영화 내용을 설명하다가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오늘 환상이 다 깨질 것”이라며 농담을 던져 박장대소하게 만들고, 속을 툭 터놓는 듯하다가 일순간에 싹둑 잘라버린다.

보여줄 듯 말 듯.

그가 1000만 관객 영화 ‘괴물’에 이어 미스터리 추리극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관객을 다시 찾아온다.》

17명이 사는 작은 섬 극락도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주민 전체가 피해자이며 용의자가 되는 상황. 주민들은 보건소장 제우성(박해일)을 필두로 범인 추리에 나선다.

“감독님이 옛날에 지인에게 들었던 얘기래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볼 수도 없어요. 관객의 몫이죠.”

스릴러는 ‘살인의 추억’에 이어 두 번째. ‘살인의 추억’에서 범인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묘한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에는 속 시원하게 해결되고 왜 그런지 다 알려 주는 친절한 영화예요.” 연쇄 살인이라는 소재가 끔찍하다고 말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사실을 보여 주는 뉴스가 영화보다 더 세고 끔찍하지 않나요?”

전남 신안군 가거도에서 5개월간 촬영했다. 목포로 나가는 배가 이틀에 한 번 들어오는 곳. 답답하고 외로운 감정이 영화의 기운과 잘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다. 영화 속에서 ‘미친 날’이라고 표현되는 기상악화는 섬에서 일상적인 일이다.

“낮에도 안개가 자욱해서 ‘극락도’라고 하는데 안개가 걷히면 바람이 불고, 겨우 햇빛이 나면 비가 오고. ‘인어공주’도 우도에서 찍어서 제가 섬을 좀 아는데, 촬영에는 최악의 공간이에요. ‘빨리 찍고 나가자’는 생각에 단합은 잘됐죠.”

섬에선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제 앞에서 ‘거, 배우가 온다는데 어딨나’ 하면서 쓱 지나가곤 하셨죠. 함께 출연하신 최주봉 김인문 선생님이 최고 스타였어요. 숙소에 회가 배달되고. 아, 동사무소 직원 한 분이 절 알아보셨다.”

극중 캐릭터는 투철한 직업정신이 있는 인물이며 여태까지 맡은 인물 중 가장 고학력자라고. ‘괴물’에서도 대졸 백수가 아니었느냐고 하자 “이번엔 ‘S대 의대’란다. 제작사인 두 엔터테인먼트의 최두영 대표는 그에 대해 “주연 배우들은 현장에서 성질도 부리고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고 했다.

“저는 현장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요. 프로들은 자기 일만 확실히 하면 된다고 하지만, 더 열심히 하게 되는 힘은 사람 간의 관계에서 오는 거죠.”

그래서일까. 현장에서 설거지를 하는 그의 모습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집에서도 잘 하느냐고 물었더니(그는 작년에 결혼했다) “그렇다” 하곤 그만. 사생활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이 길지 않다.

최근의 한국 영화 위기론에 대해 물었다. “스크린 쿼터 때도 많이 참여했지만. 일단은…나부터 잘하고 싶어요. 자기라도 잘해야 할 말이 있죠.” 뭔가 대단한 얘기를 할 것 같다가 그냥 마무리해 버리는 것도 그의 스타일.

인터뷰가 끝날 즈음. 인터넷에 올릴 동영상 촬영을 위한 인사말을 부탁했다. 그는 ‘안 하면 안 되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저 그런 거 잘 못해요. 오락 프로그램도 못 나가요. 나가서 버벅거려 영화 홍보 망칠까봐. 연기하곤 달라요. 그냥 얼어요.” 자연스럽게 말하는 모습을 찍겠다며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댔다.

“음, 관객들도 범인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메시지가 있어요…(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떨어뜨리곤) 아아, 안 나오잖아. 이거 봐.”

결국 18초밖에 찍지 못한 동영상(dongA.com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을 보면, 어쩐지 그 자연스러움이 가장 ‘박해일답게’ 느껴질 거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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