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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3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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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태생인 그는 9년간의 면벽(面壁) 수행을 통해 선(禪) 수행과 돈오(頓悟)의 전통을 세웠고 그의 제자인 2조(祖) 혜가(慧可), 3조 승찬(僧璨), 4조 도신(道信), 5조 홍인(弘忍), 6조 혜능(慧能)에 이르러 ‘선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이 같은 선종은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파돼 동북 불교의 기초가 된다. 5∼11일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개발원이 ‘선의 원류를 찾아서’를 주제로 마련한 중국 선종 사찰 탐방기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해설은 한국의 대표적 선승인 고우(古愚) 스님이 맡았다.》
대륙은 온통 샛노란 유채꽃밭이다. 꽃밭 사이로 곧게 뻗은 고속도로가 마치 대륙에 영양소를 공급하는 혈관처럼 보인다.
한국 불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 달마 대사부터 6조 혜능 선사가 걸었던 2400여 km의 발자취는 베이징(北京)에서 대륙의 배꼽이라는 우한(武漢)을 거쳐 광저우(廣州)에 이르는 대륙의 남북 종주코스와 일치했다.
‘선(禪)’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이다. 무얼 깨닫는가. 자신의 참된 모습이며 ‘절대지혜(반야·般若)’다. 부처가 가졌던 불성(佛性),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 진정한 나인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향한 항해다. 그런데 ‘참된 자아’는 생각으로, 논리로, 이성으로 찾을 수 없다. 말과 생각을 끊고, 시공(時空)을 초월해 일체의 집착과 선(善)과 악(惡), 유(有)와 무(無), 청(淸)과 탁(濁)의 분별심에서 놓여나는 것이다.
인간의 근원적 본성을 꿰뚫는 선 수행은 중국 당나라 때 달마의 제자들에 의해 꽃을 피웠고, 6조 혜능을 통해 만개해 대륙을 넘어 한반도 및 일본으로 흘러넘치게 된다.
소림사 뒤 언덕길로 경운기를 타고 올라 다시 897계단을 헐떡이며 오르면 달마 대사가 9년간 면벽(面壁)수행을 했다는 달마동굴이 나온다. 빨간 가사를 둘러쓴 달마 대사는 익살맞은 달마도의 표정과는 달리 눈을 부릅뜨고 참배객들을 바라본다. 동굴 오른쪽 벽면에 달마의 제자인 2조 혜가 선사가 자신의 팔을 잘라 도를 구했다는 단비구법(斷臂求法)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도를 구하러 온 혜가 선사에게 달마 대사가 물었다.
―뭘 구하러 왔느냐.
“도를 구하러 왔습니다.”
―뭘 보여 줄 것이냐.
여기서 그는 팔을 잘랐다. 혜가 선사가 자신의 팔을 치유했던 이조암은 소림사의 건너편 동산 뒤쪽에 있다.
달마동굴 아래 일조암에서 마침 비구니들이 저녁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얼핏 들어도 ‘관세음보살’처럼 들리는 염불 소리에 맞춰 소고와 가죽을 두른 목탁을 두들긴다. 불교에 대한 중국 당국의 개입 흔적은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정부가 임명한 30대 방장, 절 게시판에 붙여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의 신년사, 관광지화된 사찰들….
혜가의 뒤를 이어 3조에 오른 승찬 선사는 원래 나병 환자였다. 혜가를 찾은 승찬이 청했다.
―저는 죄가 많아 몹쓸 병에 걸렸습니다. 죄를 낫게 해 주십시오.
“그 죄를 갖고 오너라.”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대의 죄는 모두 참회되었다. 오직 삼보(三寶)에 안주하라.”
안후이(安徽) 성 우한 근처 톈주(天柱) 산 산자락에 위치한 3조 스님의 삼조사(산곡사)에 도착하자 난데없이 중국 스님들이 입구에 도열해 북과 징까지 울리는 등 뜻하지 않은 환영 행사를 벌여 한국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삼조사에는 승찬 선사가 법회 중 큰 나무 밑에 서서 입적했다는 얘기가 전해 오고 있다. 그 자리에 승찬의 사리를 모신 9층탑이 홀홀히 서 있다.
정저우=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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