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 징헌 섬… 그래도 떠날 수는 없제”

  • 입력 2007년 2월 17일 03시 00분


이틀에 한 번 배가 다니는 오지 낙도인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리 곽도(미역섬)에 사는 네 할머니는 섬을 쉬 떠나지 못한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집 나간 아들을 기다려야 하고, 육지에 사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다. 마을 언덕길에 올라 육지를 바라보는 강경엽, 조복례, 박민심 할머니(왼쪽부터). 김둔례 할머니는 목포의 딸 집에 잠시 다니러 갔다. 곽도=박영철  기자
이틀에 한 번 배가 다니는 오지 낙도인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리 곽도(미역섬)에 사는 네 할머니는 섬을 쉬 떠나지 못한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집 나간 아들을 기다려야 하고, 육지에 사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다. 마을 언덕길에 올라 육지를 바라보는 강경엽, 조복례, 박민심 할머니(왼쪽부터). 김둔례 할머니는 목포의 딸 집에 잠시 다니러 갔다. 곽도=박영철 기자
“오매 뭐 땜시(무엇 때문에) 이 징헌(징그러운) 곳까지 왔당가.”

5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리 곽도. 머리에 수건을 둘러쓰고 나무 지팡이를 든 박민심(78) 할머니가 손을 잡으며 반겼다.

밥을 먹던 조복례(81) 할머니는 “오랜만에 사람 구경하네”라며 같이 먹자고 소매를 끌었다.

진도에서 40km 떨어진 곽도는 뱃길로 2시간 거리. 미역이 많이 나 ‘미역섬’으로 불린다. 면적이 0.15km²로 축구장을 20개 정도 합친 조그만 섬이어서 웬만한 지도에는 아예 나와 있지 않다.

‘섬사랑 3호’라는 배가 이틀에 한 번 운항한다. 파도가 높거나 짙은 안개가 끼면 며칠씩 다니지 않는다. 사면이 풀 한 포기 없는 암벽이어서 시멘트를 메워놓은 바위에 배를 대야 한다.

미역섬에는 박 할머니, 조 할머니 외에 두 명이 더 산다. 영화에 나오는 ‘마파도’ 같은 섬이다. 강경엽(75) 할머니는 밭에 나가 집에 없었고, 김둔례(74) 할머니는 목포의 딸 집에 가 있었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역섬에는 20가구가 넘게 살았다. 1968년 배가 뒤집어져 마을 주민 9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변고가 있은 뒤 주민들은 하나둘씩 섬을 떠났다.

김 할머니는 그때 남편과 시동생 두 명을 잃었고, 강 할머니도 남편을 떠나보냈다.

요즘 할머니들은 돌김을 채취하느라 바쁘다. 썰물인 오전에 바닷가에 나가 바위에 붙은 돌김을 따서 짚으로 엮은 발에 말린다.

조 할머니는 “겨울철에 돌김을 팔아 30만 원 정도 버는데 요새는 무릎이 안 좋아 오래 일을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할머니들은 여름철 뭍에 있는 가족들이 들어오면 미역을 딴다. 발이 두껍고 쫄깃쫄깃해 10장에 70만 원을 받지만 가구당 300만 원 정도밖에 못 번다.

이래저래 모은 돈은 대부분 병원 치료비, 약값, 교통비로 쓰인다.

박 할머니는 “두 달에 한 번꼴로 섬 보건소와 육지의 병원을 다니는데 관절염, 고혈압, 두통 때문에 1년 내내 약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기는 10년 전에 들어왔다. 5km 떨어진 맹골도에서 끌어다 쓰는데, 1년치 전기료 20만∼30만 원은 네 가구가 공평하게 나눠서 낸다.

열아홉에 전남 해남군 화원면에서 이곳으로 시집온 강 할머니는 일 욕심이 많아 네 할머니 가운데 밭이 가장 많은 ‘땅부자’다.

조 할머니는 마을 대소사를 챙기는 맏언니. 편지나 소포가 오면 나눠주고 면사무소 일도 직접 본다. 지난해에는 마을로 들어오는 언덕길을 시멘트로 포장하는 ‘민원’을 해결했다.

박 할머니는 웬만해서는 밭일이나 바다일을 하지 않는 ‘공주파’다. 유일하게 눈썹 문신을 하고 뭍에 나가면 염색은 빠뜨리지 않는다.

이들에겐 또 다른 섬 식구가 있다. 염소와 강아지다.

지난해 6월 조 할머니는 새끼 염소를 섬으로 들여와 우유를 먹여 키웠다. 이제는 바위타기 명수가 됐을 정도로 제법 컸지만, 채소밭을 망쳐놓고 말려놓은 김발을 해쳐 놓기 일쑤다. 오죽하면 염소 이름을 ‘망아지’로 지었을까.

박 할머니 집에서 사는 2년생 강아지는 낚시꾼이 데려다 놓았는데, 늘 망아지 기세에 눌려 지낸다.

텔레비전은 적적한 할머니들의 친구이자 가족이다.

저녁식사를 마친 할머니들이 박 할머니 집 TV 앞에 모였다.

“주몽이 즈그 부인을 빨리 만나야 허는디…. 짠해(불쌍해) 죽것어.”(강 할머니)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영화 ‘마파도’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할머니, 혹시 마파도라고 들어 봤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박 할머니가 “그것이 뭣이여. 양파 아니여”라고 말한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할머니들은 섬 얘기를 할 때마다 ‘징하다’고 했다. 갯일에 밭일에 60년 넘게 허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해서다.

“나는 아들만 오면 나갈 꺼여.” 박 할머니는 5년 전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아들이 돌아오면 미련 없이 떠나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손을 꼼지락할 때까지는 살아야제.”

조 할머니는 자식들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다며 몸이 성할 때까지는 섬을 지키겠다고 했다.

다음 날 오전 할머니들은 안개 속을 헤치고 바닷가로 나갔다. 바닷가로 가는 갈대밭에서 할머니들에게 구성진 진도아리랑 한 자락을 부탁했다.

“사람이 살며는 몇백 년 사나/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살세/문경 새재는 웬 고개인고/굽이야 굽이굽이 눈물이 난다….”

신명나야 할 가락에는 할머니들의 60년 미역섬 인생에 켜켜이 쌓여온 한(恨)이 진하게 묻어났다.

곽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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