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았다”… 시청자 바보로 만드는 TV

  • 입력 2007년 1월 17일 02시 58분


코멘트
《지상파 방송사들의 시청자 출연 프로그램이 연출 조작이나 출연자의 거짓말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어 신뢰를 잃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청자가 사연을 털어놓는 프로그램들이 일상화된 가운데 방송사들의 책임 의식 부족과 과도한 시청률 경쟁, 일반 출연자들의 과장된 자기 노출 등이 빚어내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 잇단 의혹… 논란 커지자 실토

KBS 1TV ‘아침마당’(월∼토요일 오전 8시 반)이 13일 방영한 ‘가족노래자랑’에서 주모 씨가 거짓 사연을 말한 뒤 우승한 사실이 16일 드러났다. 이 코너에선 출연자들이 감동적인 사연을 말한 뒤 노래를 부르면 시청자들의 자동응답전화(ARS)를 이용한 투표로 1위를 뽑고 상품을 준다.

주 씨는 두 자녀와 함께 출연해 아내가 암에 걸려 가족에게 폐가 될까봐 이혼하고 떠났다고 밝혔다. 그는 “병원에서 아내를 간호하다 알게 됐다”며 노래 팀원으로 대동한 신모 씨를 소개했다.

그러나 방송 후 시청자 이모 씨가 “주 씨의 이혼 사유가 다르다. 신 씨도 병원이 아니라 술 마시는 모임에서 만났다”는 글을 시청자 게시판에 올려 주 씨의 거짓말이 들통 났다. 제작진은 15일 오후 두 사람에게 거짓말을 인정하는 확인서를 받고 ‘어처구니없는 거짓 사연으로 시청자께 심려를 끼쳐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

3일 방영된 MBC 시사프로그램 ‘생방송 오늘 아침’(월∼금요일 오전 8시 반)의 ‘청소 안 하는 주부 이야기’도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주부 김모 씨의 사례를 소개한 프로그램이 나간 뒤 인터넷 게시판에는 “(김 씨는) 다른 방송국(KBS1) 주부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사람”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논란이 커지자 김 씨는 직접 게시판에 “방송이 나간 뒤 작가와 PD에게 전화로 난리를 쳤다. 나도 이렇게 심각하게 나올 줄 몰랐다. 늘상 생활하는 모습이지만”이라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11월 말에도 실직한 40대 가장의 이야기를 허위로 소개했다가 누리꾼들의 항의로 뒤늦게 조작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문제의 출연자는 MBC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날 오후, KBS 2TV ‘윤종신의 소문난 저녁’에 부부 공동 명의를 주제로 한 코너에도 나왔다가 시청자들의 지적을 받았다.

○ 책임 의식 부족… 외주사에 책임 전가

방송 전문가들은 △방송사의 무분별한 시청률 경쟁과 프로그램 검증시스템 결여 △제작진과 출연자의 윤리 의식 부족 △지상파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의 주종 관계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특히 이들은 지상파의 책임 의식 부족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지상파의 한 PD는 “서약서를 받을 수도 없고 어떻게 일일이 출연자를 다 확인할 수 있느냐”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외주 제작사에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우룡(방송위원)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외주 제작사가 제작한 프로그램의 거짓 사례에 대해 지상파도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며 “지상파는 제작진의 윤리 의식을 강화하고 방영 사례의 사실 여부를 이중 삼중 확인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 BBC는 제보된 사실이나 사례를 다양한 각도에서 확인하는 ‘투 소스 룰(Two Sources Rule)’을 강조하고 있다.

지상파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외주 제작사의 제작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방송 3사는 아침 프로그램의 요일별 아이템을 외주 제작사에 맡기는데 이들 외주 제작사가 방송사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억지 사례’를 만들어낸다는 지적이다.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지상파의 지시를 받는 처지여서 무리하게 일정을 잡는 데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소재에 끌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단 나가고 보자’는 출연자들의 심리도 문제다. 일반인 출연자 섭외 카페 회원 A 씨는 “방송사가 원하는 사례가 100% 맞는 경우는 드물다”며 “출연자들이 TV에 나가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방송사의 요구에 어느 정도 자기 이야기를 맞추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