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동맥, 저 박동소리가 들리는가…KF-16 동승기

  • 입력 2006년 12월 30일 03시 00분


세밑, 해발 7000피트(약 2100m) 상공에서 내려다본 조국의 산하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본보 윤상호 기자와 공군 19전투비행단 소속 조종사들이 탑승한 KF-16 전투기 편대가 백두대간 위를 날고 있다. 전투기 편대는 시속 800km로 비행하며 동해지역 초계임무를 수행했다. 사진 제공 공군
세밑, 해발 7000피트(약 2100m) 상공에서 내려다본 조국의 산하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본보 윤상호 기자와 공군 19전투비행단 소속 조종사들이 탑승한 KF-16 전투기 편대가 백두대간 위를 날고 있다. 전투기 편대는 시속 800km로 비행하며 동해지역 초계임무를 수행했다. 사진 제공 공군

눈 덮인 설악산, 해발 7000피트(약 2100m)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설악산은 실핏줄 같았다. 눈이 쌓인 곳과 녹은 곳의 음영이 만들어 내는 착시였다.

백두대간이라는 동맥에서 뻗어 나온 핏줄은 설악산, 소백산 같은 실핏줄로 이어졌다. 실핏줄들이 우리 산하에 신선한 피를 보내 주고 있었다.

그 산과 산 사이로 황토색 젖줄이 용틀임하며 굽이쳐 흘렀다. 국토는 힘차게 박동하고 있었다. 아, 아름다운 산하여!



KF-16, 본보 기자 싣고 날렵하게 이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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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 포 테이크 오프(Clear for take off)!”

이륙 허가를 알리는 지상관제소와의 무선교신 직후. ‘쿵’ 하는 굉음을 내며 2만9000파운드짜리 터보 팬 엔진이 최고 출력으로 불을 뿜었다.

심장은 터질 듯 요동쳤다. 양손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몇 초 뒤. KF-16 전투기의 육중한 기체가 용수철로 튕기듯 땅을 박차고 올랐다. 엄청난 가속력으로 온몸이 뒤로 젖혀졌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솜털 같은 구름 위. 1만5000피트(약 4500m) 상공이었다. 구름 위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비행복 착용하니 ‘콩닥콩닥’…격납고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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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낮 중부전선의 공군 19전투비행단 159전투비행대대. 기자는 충청 내륙과 동해 지역의 초계비행에 나선 KF-16 전투기에 조종사들과 동승했다.

비행에는 159비행대대장인 변철구(44·공사 34기) 중령을 비롯해 올해의 ‘탑건’인 김재민(34·공사 44기) 소령, 전상국(36·공사 42기) 소령, 오충원(공사 47기) 대위 등 ‘베테랑 파일럿’들이 참가했다.



KF-16 후방석에서 직접 촬영한 이륙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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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 지역으로 이동한다.”

기체 밖으로 펼쳐진 장관에 넋을 잃은 기자의 헬멧 속 헤드폰으로 전 소령의 음성이 들렸다. 다시 구름을 뚫고 7000피트 상공까지 하강해 시속 800km로 비행한 지 10여 분. 강원 영월군과 정선군을 지나 어느덧 경북 울진군 상공에 도착하자 기체 왼편으로 동해의 푸른 해안선이 끝없이 펼쳐졌다.



5000m 상공에서 촬영한 우리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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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를 돌려 강원 강릉으로 북상하면서 바라본 동해는 태양빛에 반사돼 은빛으로 넘실거렸다. 세밑, 이 아름다운 땅과 바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6자회담 결렬….

“이제부터 전술요격(TI·Tactical Intercept) 훈련에 들어갑니다.”

어느새 날아왔는지 30여 m까지 근접한 2대의 KF-16 전투기를 포함해 기체들이 훈련 대형을 갖췄다.

전술요격은 영공을 침범한 적기와 근거리 및 원거리에서 공중전을 벌여 공대공 미사일로 격추하는 훈련. 시속 1500km를 넘나들며 근접 전투기동을 할 때 조종사는 몸무게의 최대 9배에 이르는 중력가속도(G)를 견뎌야 한다. 훈련 받지 않은 일반인은 6G 이상이면 몇 초 안에 실신할 만큼 중력가속도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상하좌우 급기동에 머리 ‘핑글’ 눈물 콧물 ‘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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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 하는 신음을 내뱉으며 이를 악문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길 여러 차례. 더는 못 참을 것 같은 순간 전투기들은 “기지로 귀환한다”며 기수를 돌렸다.

1시간 20여 분에 걸쳐 임무를 끝내고 활주로에 안착하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날 비행을 무사히 마침으로써 159비행대대는 6만 시간 무사고 비행 기록을 달성했다. 16년 1개월에 걸쳐 이뤄 낸 이 기록은 거리로 환산하면 총 3600만 km로 지구를 900바퀴 돈 것과 같다.



무사 귀환 뒤 조종사들과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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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땀에 젖은 기자가 “잘 견뎠다”고 격려하는 조종사들과 포옹을 나누자 목구멍 아래서 뭉클한 것이 올라오는 듯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한미연합사령부 해체 추진, 군 비하 발언 등 올해 안보를 둘러싼 논란은 이들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일념만으로 극한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오늘도 묵묵히 전투기에 오르는 이들이 있기에 올겨울도 따뜻하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화보]눈이 시린 5000m 상공…은빛 넘실대는 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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