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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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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이라는 동맥에서 뻗어 나온 핏줄은 설악산, 소백산 같은 실핏줄로 이어졌다. 실핏줄들이 우리 산하에 신선한 피를 보내 주고 있었다.
그 산과 산 사이로 황토색 젖줄이 용틀임하며 굽이쳐 흘렀다. 국토는 힘차게 박동하고 있었다. 아, 아름다운 산하여!
“클리어 포 테이크 오프(Clear for take off)!”
이륙 허가를 알리는 지상관제소와의 무선교신 직후. ‘쿵’ 하는 굉음을 내며 2만9000파운드짜리 터보 팬 엔진이 최고 출력으로 불을 뿜었다.
심장은 터질 듯 요동쳤다. 양손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몇 초 뒤. KF-16 전투기의 육중한 기체가 용수철로 튕기듯 땅을 박차고 올랐다. 엄청난 가속력으로 온몸이 뒤로 젖혀졌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솜털 같은 구름 위. 1만5000피트(약 4500m) 상공이었다. 구름 위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22일 낮 중부전선의 공군 19전투비행단 159전투비행대대. 기자는 충청 내륙과 동해 지역의 초계비행에 나선 KF-16 전투기에 조종사들과 동승했다.
비행에는 159비행대대장인 변철구(44·공사 34기) 중령을 비롯해 올해의 ‘탑건’인 김재민(34·공사 44기) 소령, 전상국(36·공사 42기) 소령, 오충원(공사 47기) 대위 등 ‘베테랑 파일럿’들이 참가했다.
“임무 지역으로 이동한다.”
기체 밖으로 펼쳐진 장관에 넋을 잃은 기자의 헬멧 속 헤드폰으로 전 소령의 음성이 들렸다. 다시 구름을 뚫고 7000피트 상공까지 하강해 시속 800km로 비행한 지 10여 분. 강원 영월군과 정선군을 지나 어느덧 경북 울진군 상공에 도착하자 기체 왼편으로 동해의 푸른 해안선이 끝없이 펼쳐졌다.
기수를 돌려 강원 강릉으로 북상하면서 바라본 동해는 태양빛에 반사돼 은빛으로 넘실거렸다. 세밑, 이 아름다운 땅과 바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6자회담 결렬….
“이제부터 전술요격(TI·Tactical Intercept) 훈련에 들어갑니다.”
어느새 날아왔는지 30여 m까지 근접한 2대의 KF-16 전투기를 포함해 기체들이 훈련 대형을 갖췄다.
전술요격은 영공을 침범한 적기와 근거리 및 원거리에서 공중전을 벌여 공대공 미사일로 격추하는 훈련. 시속 1500km를 넘나들며 근접 전투기동을 할 때 조종사는 몸무게의 최대 9배에 이르는 중력가속도(G)를 견뎌야 한다. 훈련 받지 않은 일반인은 6G 이상이면 몇 초 안에 실신할 만큼 중력가속도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욱’ 하는 신음을 내뱉으며 이를 악문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길 여러 차례. 더는 못 참을 것 같은 순간 전투기들은 “기지로 귀환한다”며 기수를 돌렸다.
1시간 20여 분에 걸쳐 임무를 끝내고 활주로에 안착하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날 비행을 무사히 마침으로써 159비행대대는 6만 시간 무사고 비행 기록을 달성했다. 16년 1개월에 걸쳐 이뤄 낸 이 기록은 거리로 환산하면 총 3600만 km로 지구를 900바퀴 돈 것과 같다.
온몸이 땀에 젖은 기자가 “잘 견뎠다”고 격려하는 조종사들과 포옹을 나누자 목구멍 아래서 뭉클한 것이 올라오는 듯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한미연합사령부 해체 추진, 군 비하 발언 등 올해 안보를 둘러싼 논란은 이들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일념만으로 극한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오늘도 묵묵히 전투기에 오르는 이들이 있기에 올겨울도 따뜻하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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