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의거’ 민족혼 영원히…

  • 입력 2006년 12월 19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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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6월 16일 임시 특별열차 ‘해방자호’에 실려 서울역에 도착한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동생 고 윤남의 선생이 들고 가는 모습. 뒤에 백범 김구 선생이 보인다(위). 1946년 3월 4일 일본 가나자와 시 노다산 육군묘지 부근에 암매장된 윤 의사의 유해를 한국인 청년들이 발굴하는 장면. 연합뉴스
1946년 6월 16일 임시 특별열차 ‘해방자호’에 실려 서울역에 도착한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동생 고 윤남의 선생이 들고 가는 모습. 뒤에 백범 김구 선생이 보인다(위). 1946년 3월 4일 일본 가나자와 시 노다산 육군묘지 부근에 암매장된 윤 의사의 유해를 한국인 청년들이 발굴하는 장면.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본군 대장을 처단한 매헌 윤봉길(梅軒 尹奉吉·1908∼1932) 의사의 유해가 국내로 돌아오는 사진이 18일 공개됐다.

윤 의사의 조카인 윤주(59) 월진회 부회장은 윤 의사 순국 74주기(12월 19일)를 하루 앞두고 △1946년 3월 4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거행된 윤 의사 유해 발굴 작업 모습 △1946년 3월 9일 발굴한 유해를 가나자와 역에서 기차에 싣기 직전 모습 △1946년 6월 16일 서울 역에 도착한 유해를 싣고 가는 장면 등 사진 3장과 일본군이 작성한 시체검안서 사본을 공개했다.

유해 발굴 작업 사진은 공개된 바 있으나 나머지 사진들은 처음이다. 당시 서상한 이강훈 등 독립운동가와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청년들이 윤 의사의 유해를 발굴해 국내로 송환했다.

가나자와 역에서 찍은 사진에는 유해뿐 아니라 처형에 사용된 십자가 모양의 형틀이 보이며 서울역에 도착한 유해를 싣고 가는 사진에는 임시 특별열차인 ‘해방자호’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유해를 동생인 고(故) 윤남의 선생이 들고 있는 모습과 그 뒤를 따르는 백범 김구 선생을 선명히 볼 수 있다.

일본군 군의관에 의해 작성된 윤 의사 시체검안서에는 사망시간이 오전 7시 40분(1932년 12월 19일), 순국 장소가 일본 이시카와 현 이시카와 군 우치가와 마을 미고우시 지역 육군 작업장이라고 적혀 있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虹口) 공원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 기념식장에서 일본군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 등을 도시락 폭탄으로 죽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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