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공유? 추억 재생산? '누리꾼 나만의 앨범' 인기

  • 입력 2006년 11월 14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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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1 : 3년 간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진 대학생 김창규(23) 씨는 어느 날 한 온라인 음악사이트에 접속했다. 이별 후 심경과 함께 그는 윤종신, '애즈 원' 등 15곡의 이별 노래를 선곡해 '헤어져 돌아온 길'이란 앨범을 만들었다. 그의 앨범을 들은 누리꾼들은 "힘내세요" "가슴이 저려옵니다" 등 위로의 댓글을 남겼다.

#상황2 : 직장인 이현아(29·여) 씨는 한 누리꾼이 10년 전 자신이 즐겨듣던 1990년대 가요를 모아놓은 '백 투 더 90s' 앨범을 만든 것을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이 씨도 김원준, 'R.ef' 등의 노래를 묶어 '현아의 히트송' 앨범을 만들었다.

○ 당신을 위한? 누리꾼을 위한! '나만의 앨범'

1980,90년대 누구나 생일을 맞은 친구나 연인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공테이프에 담아 선물했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공테이프 대신 MP3 파일이 대세인 지금, '나만의 앨범'은 인터넷 음악사이트에 만개했다.

'벅스뮤직' '맥스MP3' '뮤즈' 등 온라인 음악사이트를 중심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엮어 만든 '나만의 앨범'이나 '공개 앨범' 코너가 누리꾼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벅스뮤직'의 경우 '나만의 앨범'에 게시되는 앨범 수만 하루 평균 500건. '맥스MP3' 역시 '공개 앨범' 코너에 200건 이상의 앨범이 게시되는 등 사이트 내 최고 인기 코너로 자리 잡았다.

주제도 다양하다. '직장 동료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축하 앨범부터 '비 올 때 듣는 음악' 같은 날씨 앨범, '정선이에게 바치는 음악' 등의 사랑 고백 앨범이나 '1970년대 닭장 히트송' 등 세대별 히트곡 등 메뉴만도 80개가 넘는다.

앨범의 주인공 역시 과거 특정인에서 앨범당 10만~50만명으로 불특정 다수가 됐다. 김창규 씨는 "여자친구에게 바치는 앨범을 만들었는데 수십 명의 사람들이 힘내라는 댓글을 달아주어 마치 여러 명에게 내 음반을 돌린 것 같다"라고 말했다.

○ 감정의 공유? 추억의 재생산?

인터넷 속으로 들어간 '나만의 앨범'에 누리꾼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음반제작자처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MP3플레이어의 보급으로 "이 노래 한 번 들어봐" 식으로 자신의 앨범을 꾸려 여러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맥스MP3'의 공개 앨범 담당자 김형두 씨는 "뛰어난 선곡 능력을 인정받은 몇몇 누리꾼들의 경우 100여개의 앨범을 갖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새로운 앨범을 기다리는 등 인기가수 못지않은 반응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인터넷으로 인해 음악 선곡의 한계가 없어졌다. 음반을 갖고 있지 않아도 검색 한 번으로 음악 파일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 히트곡이나 알려지지 않은 곡, 무명 가수의 곡 까지 자유롭게 선곡할 수 있다.

벅스뮤직 음악사업팀 안지영 과장은 "요즘 누리꾼들은 과거처럼 최신 곡이나 히트송만을 듣지 않고 자신이 직접 선곡한 음반을 들으면서 '난 이 음악을 듣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공감을 얻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만의 앨범'에 대해 음악계는 "추억의 재생산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음악평론가 성우진 씨는 "'익숙한 음악이 좋다'는 생각이 누리꾼들에게 퍼져 있다"며 "새로운 음악 트렌드나 히트곡의 영향력이 약해졌고 이는 가요계에 리메이크 복고풍 등의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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