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크린에선 ‘추억’의 노래 흘러 나온다

  • 입력 2006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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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혁재 기자
그래픽=이혁재 기자
1988년 가수왕 최곤(박중훈). 1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가수왕이라고 믿고 있는 그의 곁에는 엄마 같은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박민수는 최곤을 떠난다. 지친 몸을 이끌고 탄 버스 안. 아내와 함께 김밥을 팔고 온 박민수는 우연히 최곤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다.

“저도 사람을 찾습니다. 이름 박민수…. 형, 왜 안 와…”

울먹거리는 최곤의 목소리 사이로 노래 한 자락이 흘러나왔다.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 내 마음 머물게 하여 주오…”

2006년 영화 ‘라디오 스타’는 가수 조용필의 1989년 히트곡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를 흘려보낸다. 김밥만 꾸역꾸역 먹는 박민수. 그의 마음을 대신하는 옛 노래 한 곡. 영화 속 흘러간 가요는 때로 백 마디 말보다 많은 얘기를 들려준다.

● What… 영화 속 트렌드? 흘러간 가요

‘라디오 스타’에서는 조용필의 노래를 비롯해 ‘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흐르고 박민수는 입버릇처럼 신중현의 ‘미인’을 부른다.

‘가문의 부활’에서는 탁재훈이 노래방에서 조용필의 ‘비련’을 부르며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연애참)에서는 장진영이 진주의 ‘난 괜찮아’를 부른다. 다음 달 9일 개봉 예정인 영화 ‘열혈남아’에서는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가 영화 전반에 흐른다.

최근 한국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런 노래도 있었어?” “오랜만에 듣네” 등의 반응을 보인다. 영화를 위해 따로 만든 영화음악이 아니라 ‘영화 속 흘러간 가요’가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 Who… 누가 가요를 재발견하는가?

선곡은 가요의 영화 속 성격에 따라 다르다. 메인 테마처럼 사용되는 배경음악은 주로 감독들이 영화 제작 전 이미 마음을 먹고 삽입한다. 조동진의 ‘제비꽃’을 삽입한 영화 ‘각설탕’의 이환경 감독은 “‘제비꽃’을 너무 좋아해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네 달 동안 공CD에 제비꽃 노래만 넣어 반복 청취했다”고 말했다. 조용필의 노래가 영화에서 최초로 ‘삽입’됐다며 화제를 모은 ‘라디오 스타’ 역시 마찬가지. 이준익 감독은 “조용필 씨 노래를 좋아해 중학교 동창인 안성기 씨에게 졸라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반면 다음 달 2일 개봉하는 ‘잔혹한 출근’에서 배우 오광록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하남석의 ‘밤에 떠난 여인’이나 ‘연애참’에서 김승우와 장진영이 부른 ‘밤이면 밤마다’ 등 극중에서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들은 배우들이 직접 고른 애창곡이다.

● How… 노래방 노래부터 OST 음반까지

영화에서 가요를 흘려보내기 위해서는 저작권 사용료와 음원 사용료를 내야 한다. 가격은 음원 제작자와 영화 제작자 간의 협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천차만별이다. 평균 100만 원에서 1000만 원 선이다.

그러나 이는 원곡을 편곡하거나 노래방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경우에 대한 비용에 해당하며 원곡을 그대로 사용할 경우 오리지널 곡에 대한 실연자의 저작인접권료까지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OST 음반에 수록될 경우 가격은 더 비싸진다. 그러나 ‘열혈남아’의 이정범 감독은 “음원 사용료를 추가로 내야 하는 부담도 있지만 그보다 흘러간 가요를 음반에 담을 경우 영화음악 감독이 만든 새 노래들이 묻힐 수 있기에 새로 편곡해 삽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Why… 추억을 넣어 흥행을 만든다

흘러간 가요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 ‘광복절 특사’(강애리사의 ‘분홍 립스틱’) ‘어린신부’(이지연의 ‘난 사랑을 아직 몰라’) ‘가문의 영광’(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 등 2000년 이후 영화 속 ‘조연’처럼 꾸준히 삽입돼 왔다.

옛 가요들이 영화 속 트렌드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옛 것을 재발견함으로써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담겨져 있다. 음악감독 방준석 씨는 “신곡을 삽입할 경우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익숙한 가요를 들으면 친근감과 따뜻함을 느끼면서 공감을 얻어 영화의 흥행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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