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뱅크’ 感이 온다… 은행점포에 미술관

  • 입력 2006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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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센터는 1998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화랑을 열었다.

평창동은 전통적인 부촌(富村)으로 교육 수준이 높고 예술가가 많이 사는 동네로 잘 알려진 곳. 굳이 이곳에 화랑을 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품을 감상하러 오는 주민은 예상보다 적었다. 화랑보다는 레스토랑과 카페에 사람이 더 몰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가나아트센터 김미라 부장은 고민했다. 그때 은행을 만났다.

○ ‘화랑과 은행이 만나다’

이인순 외환은행 평창동 지점장은 이달 초 점포 180평 가운데 80평을 쪼개 ‘미니 화랑’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가나아트센터를 찾아갔다.

“전시 공간을 무료로 빌려 주고 그림 구매 고객을 연결해 드릴게요. 그 대신 가나아트센터 측에서 좋은 그림을 골라 전시해 주세요.”

이렇게 해서 은행과 화랑의 ‘동반 여행’이 시작됐다.

상대방에게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은행 지점의 경쟁력은 고액 자산가 등 ‘VIP’ 고객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고액 자산가를 유치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비싼 돈을 들여 매장 인테리어를 바꿔도 이들은 쉽게 싫증을 냈다.

이 지점장은 고민하다가 화랑을 떠올렸고, 은행 점포에 전시장을 내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반면 화랑의 고민은 그림을 살 여력이 있는 ‘부자 고객’을 유치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 부장은 “평창동 주민들에게 미술 작품을 조금만 설명하면 금세 미술에 빠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도 도무지 ‘첫 단추’를 끼우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때 나타난 은행이 도움이 된 것이다.

○ 고객을 찾아가는 예술

은행과 화랑의 만남을 처음 시도한 곳은 국민은행. 지난해 5월부터 전국 16개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서 그림과 조각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화랑의 전문 큐레이터가 은행 전시공간에 적당한 작품을 선정하고, 1∼2개월 주기로 작품을 교체했다. 상설 전시장 못지않은 전시공간을 은행 점포에 마련한 것이다.

국민은행은 고객을 대상으로 미술품 투자 강좌도 열었다. 고객 자산관리의 일환으로 전시작품 판매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다.

국민은행의 전시와 강좌를 담당한 곳은 표화랑. 이 화랑은 올해 8월까지 국민은행을 통해 20여 점의 그림을 팔았다. 자체 전시공간에서는 35점의 작품만 걸 수 있었지만 16개 국민은행 PB센터의 전시공간을 활용해 모두 250여 점을 소화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신한은행도 수도권 9개 PB센터에서 화랑 3곳과 함께 ‘갤러리 뱅크’를 열었다. 국내 유명 원로 화가의 작품들을 전시 판매하고, 판매 수익금의 10%는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등 국제 구호단체에 기부한다고 한다.

○ 작가도 변했다

새로운 전시공간이 열리자 작가들의 참여도 활발해졌다.

표화랑은 국민은행 PB센터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부정기적으로 열고 있는데, 화가들의 참여 열기가 뜨겁다고 한다. 그럴 만한 것이 은행의 PB 고객들은 최소한 수억 원대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미술시장이 탐내는 ‘잠재 고객’이기도 하다.

표미선 표화랑 사장은 “PB센터는 작가들이 평소 접하기 힘든 고객들과 만나는 고급 사교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은행 평창동 지점에는 신진 작가들의 개인전 문의도 쏟아진다. 김 부장은 “젊은 전업 작가들이 새로운 고객에게 자신의 예술 세계를 알리는 데 더욱 적극적이다”고 귀띔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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