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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9월 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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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수염에 방금 전 상투를 자른 듯 헝클어진 머리, 선해 보이면서도 뭔지 모를 끼가 넘쳐 흐르는 듯한 눈빛….》
한-프랑스 수교 120주년을 맞아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에서 불교를 주제로 전시회를 여는 목아(木芽) 박찬수(58) 씨. 그의 인상은 전통과 현대, 종교와 종교를 뛰어넘는 ‘무정형(無定型)의 자유’ 그것이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인 그는 파리 인근 에브리시 성당 내 국립종교미술관에서 9월 15일부터 10월 29일까지 8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성당 내 종교미술관에서 불교 조각품 전시회를 여는 것부터 매우 이례적이다. 전시회를 주관하는 이베트 샤페 관장은 박 씨의 작품에 대해 “불교의 역사를 줄줄이 이야기하지 않고도 그 자신만의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는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옆으로 붙이는 ‘나비 빗장’ 위에 조각을 한 뒤 돌가루 등 자연염료로 한국의 토속적 정취와 불교의 해학적 미학을 접목했다. 그의 작품은 한국적이면서도 창의적이다. 불교계에서는 “그가 손대는 나무는 부처와 보살, 나한과 동자승으로 새 생명을 얻는다”고 말한다.
‘내 종교가 좋으면 남의 종교도 좋지요’라는 제목의 목조각품은 불교와 기독교, 유교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어깨동무하듯 공존한다. ‘민족혼의 수호신’이라는 작품은 장승과 도깨비 등 우리 민족 속에 터 잡은 터줏대감들이 예수와 부처 공자 등과 함께 국태민안과 남북통일을 기원하고 있다. 다양한 종교적 형상을 민족과 전통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녹여낸 것.
동자승 모습의 부처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이라고 말하는 듯한 조각의 제목은 ‘오늘도 당신에게 기분 나쁜 말을 했으면 용서해 주세요’다. 작품마다 이처럼 폐부를 찌르는 경구를 붙이고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역해 놓았다.
박 씨는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숨어 있는 한(恨)의 미학을 해학으로 담아내고 싶었다”며 “갈라진 민족의 통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해야 조상님들에게 나중에 할 말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제라르 슈리게라 씨는 전시평에서 “그의 불상을 대하면서 불상의 무궁무진한 표정은 부처를 참배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일치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며 “그가 지칠 줄 모르고 찾아들어가는 것은 바로 동시대 사람들, 즉 고통받는 이웃”이라고 썼다.
경남 산청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2세 때 상경한 뒤 ‘동동구리무’ ‘아이스케키’ 판매와 ‘공동묘지 이장작업’ 등 안 해 본 일 없이 가난과 싸웠다는 박 씨.
그는 고등학교 때 조각가 김성수 선생의 문하생으로 입문해 40여 년간 한길을 걸어 왔다. 1993년부터 경기 여주군에 목아불교박물관을 열었고, 목아전통예술학교를 설립해 후학을 양성 중이다. 031-885-9952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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