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84>此地無銀三百兩

  • 입력 2006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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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에 한 사나이가 살았다. 한번은 은화 삼백 냥을 벌게 됐다. 그는 돈을 누군가가 훔쳐 가지 않을까 걱정했다. 돈을 땅속에 묻어 두기로 작정하고, 부근의 산에 가서 구덩이를 판 후에 은화 삼백 냥을 묻었다. 그러나 누군가 돈을 파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는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구덩이 앞에 팻말을 세우고 ‘此地無銀三百兩(차지무은삼백냥)’이라고 써 두었다. ‘此’는 ‘이, 이것’이라는 뜻이고, ‘地’는 ‘땅’이라는 뜻이므로 ‘此地’는 ‘이 땅, 이곳’이라는 말이다. ‘無’는 ‘없다’라는 뜻이고, ‘銀三百兩’은 ‘은화 삼백 냥’이라는 뜻이다. ‘此地無銀三百兩’은 ‘이곳에는 은화 삼백 냥이 없다’는 말이 된다.

사나이의 이웃에 왕이(王二)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왕이가 어느 날 산길을 걷다가 팻말을 보게 되었다. 그는 팻말에 쓰인 글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해 파 보았다. 거기에는 은화 삼백 냥이 묻혀 있었다. 왕이는 돈을 훔쳐 버렸다. 왕이도 돈을 훔쳐 간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누가 알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왕이는 팻말 뒤에 다음과 같이 써 두었다. ‘왕이가 삼백 냥을 훔쳐 가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는 감추어야 할 것도 있지만 더러는 감추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바보스러움도 가끔 감추지 말아야 할 것 중의 하나에 속한다. 우리는 바보스러운 사람에게서 더러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 자신에게도 그러한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보가 되어야 할 상황에서는 바보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굳이 바보스러움을 감추려고 꾀를 내다 보면 그것이 바로 ‘此地無銀三百兩’이 된다. 가끔 바보스러울 수 있는 용기, 그것은 자신만만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진정한 용기이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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