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열기 속으로 30선]<23>박지성 휘젓고 박주영 쏜다

  • 입력 2006년 6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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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허공을 밟고 가는 사람, 보허자(步虛子)다. 싸움은 근육이 하겠지만,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 바람 같은 것이다.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느껴지지만 만져지지 않는다. 전투는 사병이 하지만, 승패는 지휘관의 전술이 결정한다. 전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바람이며 보허자다.―본문 중에서》

어디에나 고수는 있는 법이다. 꼭 첩첩산중에 들어가야 그를 만나는 것은 아니다. 저잣거리에서도 고수는 활개 친다. 저자는 고수다. 길게 끌지 않는다. 단칼에 내리친다. 문장은 짧게 끊어 치는데, 할 말은 다하고 있다.

이 책은 주도면밀하다. 짧은 패스로 상대편 수비의 벽을 허무는 격이다.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노련한 공격수를 닮았다. 분명 축구 이야기를 읽고 있었는데, 어느새 바둑 이야기가 나오고 장기판이 벌어진다. 어라, 하다 보면 리더십 이야기가 이미 널려 있고, 그러다 한국사회의 병폐가 드러난다. 축구를 축구로만 보는 통념의 벽을 간단히 무너뜨린 것이다. 축구는 현실의 반영체로 발언한다.

이 책은 겉멋 들지 않고 사실에 기초해 말한다. 혼자 읽더라도 키득키득 하며 웃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라치면 이렇다. 골키퍼가 온 몸을 날려 공을 잡으면 얼마나 멋지던가. 그걸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보면 마치 날아가는 한 마리 새 같다는 착각마저 든다. 한데, 그거 다 ‘말짱 도루묵’이란다. 다이빙이나 펀칭은 골키퍼가 판단착오로 자리를 잘못 잡아 고육지책으로 하는 몸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골대 양쪽으로 오는 땅볼은 발로 막는 게 빠르단다.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로 가득하다. 아니 이야기라기보다는 ‘입담’이라 말해야 더 정확하고, 그보다는 ‘구라’라고 하면 제격이다.

비유와 화려한 수사로 가득한 문장을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가령 박주영은, 화려한 공격을 자랑하는 바둑기사 유창혁에 빗대어진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한발 한발씩 숨통을 조여 간다는 것이다. 박지성은 조훈현이다. 성동격서라, 동쪽에서 소리를 질러대다가 냅다 서쪽을 공격하는 형세다. 축구가 어찌 바둑 같기만 하랴. 정경호는 장기판의 ‘차’다. 질풍같이 내달려 벌처럼 쏜다나. 설기현은 ‘상’이니, 상대를 향해 묵직한 미사일을 쏘아 올린다. 안정환은 ‘말’이다. 벌칙 구역 안에서 어슬렁거리다 강력한 뒷발질을 해대니까.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법이다. 재미가 붙으면 더 잘 알게 된다. 술자리에서 아는 척하며 한마디라도 하려면 3부 ‘알고 보면 짜릿한 축구’를 꼼꼼하게 읽어볼 것. 축구에도 ‘백두대간’이 있으니, 골키퍼, 센터 백,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최전방 센터포워드로 이어지는, 사람으로 치면 등뼈에 해당한다. 각각의 역할을 알아야 현대축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터다. 자신이 리더이거나 리더가 되고 싶은 이라면 ‘감독론’에 주목할 것. 하나의 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기업을 운영하는 원리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터이다.

축구를 축구로만 보면 재미없다. 문화로 보고 정신으로 보고 경영으로 보아야 참맛을 안다. 휘슬이 이미 울려 너무 늦었다고? 고수의 책을 보면 금세 배울 수 있는 법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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