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팬클럽 마니아의 세계

  • 입력 2006년 5월 5일 15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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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만 팬클럽이 있는 게 아니예요. 특정 브랜드에 환호하는 열성 팬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주부 표영임(26) 씨는 의류브랜드 '타임' 마니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타임 브랜드 일색이다. 한 가지 디자인을 색깔별로 모은 적도 있다.

표 씨는 인터넷 포털 다음 카페의 '한섬 팬클럽' 열혈 회원이다. 이 카페에는 의류업체 한섬의 타임, 마인, 시스템 브랜드를 좋아하는 1만5000여 명이 가입해 있다.

인기 브랜드일수록 팬클럽 규모가 커진다. 클럽 회원이 30만 명이 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브랜드 마니아들은 같은 브랜드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동료애를 느끼고 결속한다.

'더 잘 만들라'고 채찍질하는 열혈 소비자들은 기업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기도 한다.

● '너도 좋아해? 우린 코드가 맞아!'

"하는 일은 달라도 '미니'를 좋아한다고 하면 뭔가 통해요. 나만의 색깔을 중시하고, 남의 시선을 즐긴다고 할까요…"

전자업체 연구원인 노민정(29) 씨는 BMW 미니의 열혈 팬이다. 핸들 조작이 까다롭고 승차감도 별로 좋지 않아 실용성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마냥 좋다고 한다.

노 씨는 다음 카페에서 '미니쿠퍼코리아'를 운영하고 있다. 3000여 명의 회원 가운데 실제 미니 소유자는 10% 안팎. 나머지는 '잠재 오너'인 셈.

미니쿠퍼코리아의 정기 모임은 색다르다. 미니 20~30대를 줄지어 몰고 다니며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올 6월에는 미니로 제주 해안도로를 일주하는 '클럽 데이'를 계획하고 있다.

브랜드 마니아들은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느냐가 곧 자신을 말해준다'고 믿는다. 같은 스포츠 브랜드라도 '나이키파'와 '아디다스파'는 다르다고 한다.

다음 카페 '나이키 매니아' 운영자인 김기석(26) 씨는 "아디다스파는 대체로 패션을 중시하는 반면 나이키 마니아는 기능성을 더 따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순화 수석연구원은 "브랜드 마니아들을 브랜드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며 "휴대폰, 패션의류 등 밖으로 드러낼 수 있는 제품에 마니아들이 많다"고 말했다.

● '사랑하는 이'의 잘못, 그냥은 못 봐!

그저 호감을 느끼는 수준에서 상대의 잘못을 발견했다면?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랑하고, 끈끈한 정까지 있다면 잘못된 점은 어떻게 해서든 고치려 한다. 쉽게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브랜드 마니아들은 기업에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프로슈머(생산에 참여하는 소비자) 역할도 적극적으로 한다.

올 3월 영국 유모차 맥클라렌은 1965년 회사 창립 후 40년 이상 고수한 햇볕가리개 디자인을 종전 2단에서 3단으로 바꿨다.

한국에 결성된 맥클라렌 동호회(1만4000여 명)가 "햇볕을 반기는 영국에서는 2단 가리개로 충분하지만 한국에선 2단으로는 햇볕을 충분히 가릴 수 없다"며 개선을 요구한 것.

결국 영국 본사는 햇볕을 충분히 가릴 수 있는 3단 햇볕가리개 유모차를 새로 만들어 전 세계에 공급하게 됐다.

미니 마니아들은 올초 BMW코리아의 서비스센터 담당 임원을 만나 지방 순회서비스 개선, 숙련 엔지니어 매장 상시 배치 등 서비스 개선 약속을 받아냈다.

● '우리의 팬이 돼 주세요'

아무 브랜드나 팬이 있는 게 아니다. 인지도가 낮은 브랜드는 팬클럽 활동도 저조하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직접 나서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통 고객'을 마니아로 바꾸려고 안간 힘을 쓰기도 한다.

아가방은 아동복 '오즈'클럽을 지난달 커뮤니티 사이트 싸이월드에 개설했다. 인지도가 낮아 자발적인 팬클럽이 없어 회사에서 직접 커뮤니티를 만든 것.

P&G 비듬샴푸 '헤드 앤 숄더'는 온라인에 소규모의 마니아 층이 형성되자 '헤드&숄더 마니아 클럽'을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마니아들을 '육성하고' 있다.

LG경제연구소 박정현 연구원은 "특정 브랜드에 열광하는 마니아들은 온라인 교류를 통해 더욱 열성 팬이 된다"며 "이들은 얼리 어답터(제품 조기 수용자), 홍보대사, 프로슈머 등 1인 3역을 하는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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