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여성광부, 성차별에 맞서 싸우다…‘노스 컨츄리’

  • 입력 2006년 4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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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이라는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인 사회에서 외롭게 싸우는 여성 광원의 실화를 옮긴 영화 ‘노스 컨츄리’.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광산이라는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인 사회에서 외롭게 싸우는 여성 광원의 실화를 옮긴 영화 ‘노스 컨츄리’.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대부분의 미녀 배우는 영화를 통해 자기 외모가 빛날 때 우월감에 가까운 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어떤 배우들은 영화에서 자신의 어여쁜 이미지가 잔혹하게 난도질될 때 묘한 성취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쾌감은 중독성을 갖는다. 27일 개봉된 영화 ‘노스 컨츄리(North Country)’에서 주연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할리우드 스타 샤를리즈 테론(31). 그녀는 후자에 속하는 여배우 같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이 여배우는 2004년 그녀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몬스터’ 이후 5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중 ‘몬스터’에 뒤이어 ‘노스 컨츄리’가 국내에서 개봉되는 차기작으로 점 찍힌 것은 참 공교롭다. ‘몬스터’에서 그녀는 뭇 남성에게서 성적 학대를 받다가 결국엔 남자들을 연쇄 살인하는 비운의 창녀를 실감나게 연기했지만, ‘노스 컨츄리’에서도 남자 광원들의 성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석탄회사를 상대로 외로운 소송을 제기하는 여자 광원으로 열연했다.

‘몬스터’에서 13kg이나 몸무게를 불리고 얼굴이 짓뭉개진 추녀(醜女)로 변신하면서 아름다운 얼굴을 기억하던 사람들에게 (심리적 충격 이전에)시각적 충격을 던져주었던 테론. ‘노스 컨츄리’에선 검은 석탄가루를 잔뜩 뒤집어쓴 채 여성의 인권을 부르짖는, 눈물 많은 어머니이자 강인한 투사다. 테론은 자신의 눈부신 외모를 오히려 한계로 규정하고 이를 뛰어넘으려 하는 것 같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조시는 이혼한 뒤 고향인 미국 미네소타 북부로 돌아온다.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조시는 월급이 많은 광산에서 일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광산은 보수적인 이 마을에서 남자들만의 일터로 인식되고 있다. “남자들의 일거리를 빼앗는다”는 비난 속에서도 조시는 일을 계속하고, 남자 광원들은 교묘한 차별대우와 잔인한 성적 학대를 퍼부으면서 그녀를 괴롭힌다. 조시는 회사를 상대로 성차별에 관한 집단 소송을 제기하려고 하지만, 조용한 삶을 원하는 여자 동료들은 그녀를 외면한다.

이 영화는 1984년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최초의 직장 내 성폭력 소송을 소재로 했지만,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사실 자체가 영화적 리얼리티를 보장하는 건 결코 아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는 누가 보아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설정과 대사들은 진부할 만큼 직설적이다. “아담과 이브 때부터 남자는 여자에게 치근거려 왔다”면서 성추행을 당연시하는 광산의 남자들, 그리고 “이젠 내 힘으로 살 거예요. 이건 우리 모두의 일이고, 모든 여자들의 문제예요” 하고 맞서 외치는 조시의 모습도 구호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선악의 구분은 단순명료하고, 모든 갈등이 일거에 해소되는 법정에서의 막판 반전은 실화임을 의심케 할 만큼 ‘할리우드적’이다.

하지만 이 직설법은 조시가 느끼는 절망감과 절실함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말하고 싶은 바를 에둘러 말하지 않고 오직 한 군데를 향해 달려가기를 멈추지 않는, 강력한 집중력이 있는 것이다. 영화는 관객이 조시의 괴로움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단계를 지나, 관객을 사태의 한가운데로 집어던짐으로써 뭔가를 ‘절감’하도록 만든다. 단조롭지만 우직하고 동어 반복적이지만 잔인하다.

이 영화는 메시지가 직선적인 만큼 누구와 함께 보느냐가 특히 중요하다. 마초적인 상사에게 스트레스를 받아 온 여성 직장인이라면 동료 여직원과 보면서 함께 분노하고 통쾌해하길 권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에게 사귄 지 얼마 안 되는 남자친구가 있다면 둘이 함께 보기를 권하고 싶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남자라는 ‘짐승’에 대해 오만 정이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남자들아, 부끄러운 줄 알아라.

‘웨일 라이더’의 뉴질랜드 출신 여성 감독 니키 카로 연출.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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