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4년 행크애런 홈런 715호 신기록

  • 입력 2006년 4월 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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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3775명이 일제히 숨을 멈췄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 역사상 가장 많은 관중이 몰린 그날, 홈구장인 애틀랜타 풀턴카운티 스타디움에는 2년 뒤 미국 대통령이 될 지미 카터 조지아 주 지사도 앉아 있었다. 경기장 밖에서는 수천만 명의 야구팬이 TV와 라디오에 눈과 귀를 집중했다.

4회 말. 행크 애런이 타석에 들어섰다. 나흘 전 홈런왕 베이브 루스와 타이 기록인 714호 홈런을 기록한 그였다.

상대인 LA 다저스의 좌완 투수 앨 다우닝이 던진 두 번째 공이 포수의 미트에 꽂히려 하는 순간 애런의 배트가 힘껏 돌아갔다. 딱!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쭉쭉 뻗어 간 공은 왼쪽 담장을 훌쩍 넘었다.

715호. 애런이 ‘흑인의 영웅’을 넘어 ‘미국의 영웅’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974년 4월 8일 오후 9시 7분(미국 동부 시간), 미국 프로야구의 역사가 다시 쓰였다.

웬만한 선수 같으면 은퇴했을 나이인 만 40세에 대기록을 세운 애런은 이후 40개의 홈런을 더 쳐 755개의 홈런을 끝으로 1976년 선수 생활을 접었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이것은 메이저리그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애런의 야구 인생은 성실과 끈기 그 자체였다. 메이저리그에서 뛴 23년 동안 홈런왕에 오른 것은 3번에 그쳤다. 12차례 홈런왕을 차지했던 루스의 폭발성과 화려함은 갖추지 못했지만 슬럼프 또한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15시즌 연속 30개 이상 홈런을 날렸고, 그중 40홈런 이상도 8시즌이나 된다.

이 밖에 그가 쌓아 올린 통산 2297타점은 역대 1위, 통산 3771안타는 역대 3위의 기록.

이후 일본 프로야구의 오 사다하루(王貞治·현 소프트뱅크 감독)가 통산 868개의 홈런을 날렸지만 미국은 이를 ‘일본의 기록’일 뿐이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일본의 야구장 펜스가 미국보다 짧기도 했지만 1974년 가을 일본 고라쿠엔 구장에서 이뤄졌던 양국 홈런왕의 정면 승부가 ‘미국의 우위’로 끝났기 때문이다.

스윙 기회를 20번씩 주는 방식으로 열린 양자 대결에서 당시 600홈런을 넘기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34세의 오 사다하루는 9개의 공을 담장 밖으로 넘겼다. 그러나 은퇴를 준비하던 불혹의 애런은 18번째 스윙에서 10호 홈런을 기록하고는 배트를 놓았다.

미국 야구계는 1999년 ‘애런상’을 제정해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인 타자에게 이 상을 수여하고 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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