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해사-경찰대 수석졸업 女 3총사 “애국도 수석해야죠”

  • 입력 2006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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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반란, 이제 시작입니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여자라서…”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그들의 목소리는 단호해졌다. “여자라서 훈련 받을 때 봐주는 일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없었다”고 대답했다.

해군사관학교 강경(23·60기) 소위, 공군사관학교 황은정(23·54기) 소위, 경찰대 고정은(22·22기) 경위. 이들은 한때 ‘금녀(禁女)의 영역’이었던 사관학교와 경찰대를 올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군인과 경찰관을 양성하는 특수대의 여학생은 소수이기 때문에 이들의 성과는 더욱 빛난다. 이들이 졸업할 당시 해군사관학교(164명 중 17명), 공군사관학교(193명 중 17명), 경찰대(117명 중 11명)의 여학생 비율은 10% 안팎이었다. 이들은 왜 남자가 득실거리는 곳을 택했을까. 또 교육생으로서 넘어야 할 난관은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을까.

▽교사보다 여군·여경=고 경위는 중학교 때 아버지가 “경찰대에는 남자가 대부분”이라고 말하자 발끈했다.

“왜 남자만 경찰관이 되나요?”

고 경위는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일이라면 더 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가 경찰대에 지원하려고 하자 어머니는 교육대나 사범대를 가라고 말했지만 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황 소위는 고교 시절 힘들 때마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파일럿의 꿈을 키웠다. 그는 고교 3학년 때 하루에 한 시간씩 오래달리기와 팔굽혀펴기를 했다. 언니 2명은 모두 교사를 지망했다. 그는 “딸만 셋인데 내가 아들 노릇을 하겠다”며 부모님을 설득해 수석 합격했다.

강 소위도 눈물로 만류하는 어머니를 설득한 끝에 수석 합격했다.

▽“여자도 힘 세요”=이들은 남자와의 체력 차이를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꼽았다.

사관학교나 경찰대는 입학이 확정되고 입학식을 하기 전 3∼5주 적응 훈련인 ‘가입교 훈련’을 한다. 단체 생활에도 익숙하지 않은 여학생이 신병교육대 같은 혹독한 생활이 벅찬 것은 당연하다.

3명 모두 “1학년 때 남자와의 체력 차이를 줄이는 게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고 경위는 하루에 한 시간씩, 황 소위는 하루에 8km씩 자발적으로 조깅을 했다. 강 소위도 체력 단련 시간에 학교 주변의 산과 계단을 오르내렸다.

강 소위는 “처음에는 힘들지만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단기간에 체력이 향상돼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강 소위는 2학년 말 자신이 치를 떨었던 ‘가입교 훈련’에 조교로 참여해 후배들을 지도했다.

이들도 일반 여대생처럼 미팅을 즐겼을까. 고 경위는 “몇 번 미팅에 나갔는데 남자들이 다들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며 웃었다. 여자 생도에겐 남자 생도처럼 미팅 기회가 많지 않았다.

▽“조국을 위해”=이들은 포부를 묻자 모두 ‘조국’이란 단어에 유난히 힘을 줘 말했다.

황 소위의 좌우명은 ‘조국의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자’다. 고 경위는 김구 선생, 강 소위는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버리고 조국을 위해 힘쓴 위인”이기 때문이란다.

이들은 쉬운 길을 택하지 않을 생각이다. 고 경위는 올해 입학한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마친 뒤 남들이 기피하는 수사 분야에 자원할 계획이다. 강 소위는 전투병과인 항해과를 지망했다. 황 소위는 아직 분야를 결정하진 않았지만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남성을 따라하는 여군보다 여자가 강점을 보일 수 있는 따뜻한 리더십으로 좋은 지도자가 되겠습니다.”(강 소위)

“주변 환경을 핑계대지 않고 항상 도전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여자라서 더 힘들 것은 없습니다.”(황 소위)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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